『이치와 현상은 둘이 아니다
마음자리는 자재롭고 고요하며
법성에는 본래 열 가지 번뇌가 없다.
모든 것이 부처님 일 아닌 것이 없는데
어찌 생각을 거두어 좌선을 하는가.
망상은 본래부터 공적하니
반연을 끊어 없앨 필요가 없다.
지혜로운 이는 얻을 만한 마음이 없으니
저절로 다툼도 없고 시끄러움도 없어질 것이다.
무위의 크나큰 도를 알지 못하면서
언제 현묘한 이치를 증득하리.
부처와 중생은 한 종류이고 중생이 바로 세존인데
범부는 헛되이 분별을 내어
무 속에서 유에 집착해 미혹에 분주하구나.
탐욕과 성냄이 비고 고요한 줄 알며 그 어느 것이 진문 아니리.
고요함과 산란함은 둘이 아니다
성문은 소란을 피하고 고요함을 구하니
밀가루를 버리고 떡을 구하는 것과 같네.
떡은 본래 밀가루에서 생겨났는데
만드는 사람 따라 다양하게 변하네.
번뇌가 곧 보리이고
마음이 없으면 경계 또한 없는 것이요,
생사가 열반과 다르지 않고
탐욕과 성냄은 아지랑이나 그림자와도 같네.
지혜로운 이는 부처를 구하려는 마음 없지만
어리석은 이들은 밖으로 치닫고 있네.
일생을 헛되이 보내고 있으니
여래의 묘한 정수리 보지 못하리라.
음욕과 성냄의 성품이 공한 줄 안다면
확탕지옥과 노탄지옥이 저절로 식으리라.
선과 악은 둘이 아니다
나의 몸과 마음 쾌락하니
고요하여 선도 없고 악도 없네.
법신은 자재하여 방위도 없으니
눈에 보이는 것마다 정각 아닌 것 없네.
육진은 본래부터 공하고 고요한데
범부가 허망하게 집착을 내는 것이네.
열반과 생사는 평등할 뿐이니
사해의 그 무엇이 후하고 박할 것인가.
무위의 큰 도는 자연스러운 것이니
마음으로 헤아릴 필요가 없는 것이네.
보살은 얽매임이 없어 영통하나니
하는 일 항상 미묘한 깨달음을 머금고 있네.
성문들은 법에 집착하여 좌선을 하니
누에가 실을 토해 스스로 가두는 것과 같네.
법성은 본래부터 둥글고도 밝으니
병이 나았는데 왜 약에 집착하는가.
모든 법이 평등한 줄 안다면
고요하고 맑고 상쾌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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