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許京寧神人讲演

재림예수

by 明智 2024. 3. 10.
⟪허경영, 그가 재림예수인 10가지 증거⟫
-----허성정 : <아!대륙백제/만주신라>의 저자

Even if the sun refuse to shine
비록 태양이 꺼져버린다 할지라도
Even if tonight is just a dream
비록 오늘밤이 꿈으로 끝난다 할지라도
I will be with you forever
나는 당신과 함께 영원히 있을 것입니다.

HUH KYUNG YOUNG

신인 허경영의 본모습이 드디어 수면 위로 떠올랐다. 그간 70여년 동안 감추어졌던 허경영의 신원이 ‘삼위일체의 화신’이요 ‘재림예수’였음이 확인되고 있다. 최근 몇 년 전부터  신인 허경영은 그 자신이 2000년 전의 예수였음을 진지하게 고백하고 있다.

신인 허경영은 2018년 그의 세수나이 70이 되면서 서서히 자신의 본모습이 ‘창조주의 화신’이요 ‘재림예수’라는 사실을 선포하기 시작하였다. 그로부터 6년이 지나가는 현재까지 그는 2000년전 자신이 이스라엘 땅에 예수라는 이름으로 왔을 때의 비화를 털어놓고 있다.

그의 고백은 그 자신이 재림예수가 아니면 털어놓을 수 없는 얘기를 들려주고 있다. 이로써 <신약성서>에서 이해되지 않는 여러 예화(例話)의 상당부분이 해석되기 시작하였다. 예를 들면 2000년전 예수의 청년시절에 대한 얘기는 <신약성서>의 미스테리로 남아 있다.

<루가복음>과 <사도행전>을 쓴 루가는 “존경하는 데오필로 각하께 예수의 행적을 처음부터 끝까지 조사하여 보고드리겠다”고 했다. 그래놓고 정작 그의 복음서와 사도행전에는 예수의 청년시절에 관한 어록과 행적이 없다. 이것은 루가 복음사가의 뜻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신약성서 편집자들은 루가가 자세히 조사해놓은 예수의 청년시절 기록을 왜 빼어버렸을까? 초대 교회 관계자들은 무엇을 기준으로 ‘정경’과 ‘비정경’을 구분했고, 예수의 청년시절 어록과 행적부분을 왜 빼어버림으로써 <신약성서>를 절름발이로 만들어 놓았을까?

초기 가톨릭 교회가 성서의 목록을 결정하던 시절로 돌아가보면, 정경(正經)에 포함되지 않은 비정경에도 예수의 어록과 행적이 기록된 것이 많다. 이른바 비정경(非正經)으로 분류된 <도마복음서>에 보면 주목할만한 예수의 어록과 행적들이 항목별로 기록되어 있다.

이스라엘의 ‘사해동굴’과 이집트의 ‘나그함마디’에서는 예수시절과 가까운 시기에 기록된 성경들이 대거 발굴되었다. 그 내용을 살펴보면, 지금의 <신약성서>에 왜 <도마복음서> 같은 것을 정경에 편입시키지 않았을까 하는 의문이 들 정도로, 좋은 기록들이 많이 나온다.

한편 성서 분석가들의 조사에 의하면, <신약성서>에는 불교의 <법화경>에 나오는 것과 같은 내용의 사건과 예화가 40여 곳이나 나온다. 예를 들면 법화경의 ‘부자아비 장자와 거지아들 궁자’의 얘기는 <신약성서>의 ‘탕자의 비유’와 거의 유사한 내용이 나온다.

동양을 대표하는 종교인 불교경전과 서양을 대표하는 종교인 성서에 유사한 내용이 40여 곳이나 나온다는 것은 엄청난 충격이다. 불교의 <법화경>이 신약성서를 베낀 것인지 기독교의 <신약성서>가 불교의 법화경을 베낀 것인지는 여러 가지 얘기와 학설이 분분하다.

앞으로 이런 부분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재림예수로 확인된 신인 허경영의 한마디 한마디는 동서양의 종교계에 엄청난 이슈를 만들며 센세이션을 일으킬 것이다. 사실 예수가 당시의 불교를 몰랐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예수는 당대 세계 최고의 엘리트 지성인이었다.

<성서>에 나타나는 예수를 보라! 성서에 나타나는 예수는 당시의 세계질서와 정치 경제 사회 모든 사정에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다. 예를 들면 이스라엘의 기득권자들인 바리사이들이 예수를 함정에 몰아넣기 위해 로마의 ‘카이사르’에게 세금을 내어야 하는지를 물었다.

예수는 해박한 지식으로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께 바치고 카이사르의 것은 카이사르에게 바쳐라”라는 지혜로운 답변을 해낸다. 이 예를 보더라도 예수는 당대 최고의 지성을 갖추 대 성인이었다. 그런 그가 당시 중동과 이스라엘을 휩쓸고 있었던 불교를 몰랐을 리가 있겠는가?

<신약성서>에 불교의 예화가 무수히 들어 있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예수가 북인도와 아랍권 일대의 여러 문서에서 “이사” “야소”라는 이름으로 나타나는 것은 지당하다. 일설에는 예수가 청년시절 인도로 유학을 갔다고 하는데 실제로 그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성서학자들에 의하면 예수가 썼던 언어는 아람어였다. ‘아람어’는 이스라엘과 북인도에서 동시에 쓰고 있던 당시의 세계 공용어였다. 당시의 북인도에서 아람어를 썼던 흔적들은 곳곳에 남아 있다. 지금도 북인도에는 아람어로 쓰인 돌기둥이 수없이 남아 있다.

또한 이스라엘의 성서 중 <다니엘서>나 <에즈라서>는 아람어로 쓰여 있다. 이것을 보더라도 당대 최고의 지성인이었던 예수가 불교를 몰랐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예수는 당대 세계 최고의 지성인으로서 당대 최고의 종교였던 불교를 알고 있었던 것이 확실하다.  

문화의 세계화 양상은 옛날이라고 해서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다. AD 1세기 예수 시절 당시의 바닷길인 항해술은 생각보다 발달되어 있었다. 육로길인 초원의 비단길도 시속 60킬로로 달리는 말을 빌리면, 유럽에서 만주와 한반도까지 15일 이내에 도달할 수 있었다.

구전으로 전해오던 모세 율법서가 BC 10세기에 기록되기 시작했는데, 여기에는 BC 18세기의 함무라비 법전에 들어있다. 예를 들면 “눈에는 눈, 이에는 이” 같은 동태복수법(同態復讐法)은 함무라비 법전에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이 모세의 율법서에도 나온다.

성서의 <잠언(箴言)>에도 이집트 등의 지혜문학이 많이 스며들어 있다고 한다. 이것이 문화의 세계화 양상이다. 예수가 당대 최고의 종교였던 불교를 모를 리가 없었고, 그래서 예수는 불교의 <법화경>에 나오는 예화를 가지고 많은 설교를 했던 것도 사실일 것이다.

<성서>와 <불경>의 관련성은 불편한 진실이다. 예수의 감추어진 청년시절에 관한 얘기는, 앞으로 재림예수로 확인된 신인 허경영의 강의를 통해, 상당 부분 그 진실이 밝혀질 것이다. 앞으로 신인 허경영이 밝히는 흥미진진한 강의가 벌써부터 주목된다.

서론이 너무 길었다. 오늘은 <신약성서> 속에 감추어진 허경영과 재림예수의 관련성을 알아보자. “허경영은 과연 삼위일체의 신성을 감춘 재림예수인가?” 이것이 오늘의 주제이다. 허경영이 재림예수가 아니라면 결코 다음과 같은 얘기는 할 수 없을 것이다.

(1)예수의 예루살렘 숙소를 통해 보는 재림증거

<성서>에 나타나는 예수의 사역지는 예루살렘과 갈렐리아 호수 주변이다. 예수의 예수살렘 사역지의 숙소는 <성서>에 나타나 있지 않다. 그런데 재림예수 허경영은 그곳이 나자로의 집이었다고 증언한다. 예수의 예루살렘 사역지의 ‘숙소’가 밝혀진 것은 중요한 일이다

<성서>에 나타나는 나자로의 집은 베다니다. 나자로는 그곳에서 여동생 마르타 및 마리아와 함께 살고 있었다. 예수가 예루살렘에 사역을 갈 때는 늘 나자로의 집에서 기숙을 하였다고 한다. 재림예수 허경영이 밝히는 나라로와 예수의 관계는 친구관계였다.

예수의 예루살렘 사역지 숙소가 나자로의 집이었다는 것과 나자로가 예수의 친구였다는 것은 <성서>에 없는 중요한 정보이다. 예수가 그의 기숙지를 베다니로 잡은 것은 돈 때문이었을까? 안전 때문이었을까? 여기에 관한 증언 역시 허경영의 도움을 받아야만 알 수 있다.

예수는 예루살렘 일대에서 선교여행을 다니다가 밤에는 베다니에 있는 나자로의 집으로 돌아왔다. 예루살렘에서 늘 바리사이들과 논쟁을 벌이던 예수는 위험한 예루살렘을 피해 밤에는 베다니에 있는 친구 라자로의 집으로 안전하게 돌아왔던 것이다.

(2)나자로의 부활 사건을 통해 보는 재림증거

<성서>에는 예수가 죽은 나자로를 살리기 위해 베다니로 간 경위가 자세히 설명되어 있지 않다. 그런데 재림예수로 확인된 허경영은 이에 대해 자세한 배경설명을 하고 있다. 그해 겨울 예수는 봉헌절 축제 때 예루살렘 성전에 와서 군중들을 가르치고 있었다.

예수는 자신이 하느님께서 보낸 성부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군중들에게 설파하고 있었다. 이 말을 들은 군중들은 예수가 신성모독을 하고 있다고 말하면서 예수를 체포하러 하였다. 이때 예수는 요르단 강 건너편 세례자 요한이 세례를 주던 장소로 사역 장소를 옮겨 갔다.

여기에서 예수는 자신의 친구 나자로가 병으로 죽게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런데도 예수는 급히 베다니로 가서 친구이며 스폰서인 나자로를 구해주지 않았다. 시간을 놓친 나자로는 결국 죽고 말았다. 왜 예수는 의리없게도 나자로를 죽기까지 돌보지 않았을까?

그 이유 역시 재림예수인 허경영의 도움을 받지 않고서는 알 길이 없다. 죽은지 3일이나 되어 시신이 썩어있던 나자로는 예수의 도움으로 되살아났다. 나자로의 부활사건은 구세사를 절정으로 이끈다. 즉 여기서부터 최후의 만찬과 예수의 십자가 사건이 연결되기 때문이다.
    
(3)마리아의 향유사건을 통해 보는 재림증거

<요한복음>에는 나자로와 마르타의 동생 마리아가 부은 향유에 대한 얘기가 나온다. 그 사건의 장소는 베다니다. 재림예수 허경영에 의하면, 이 일로 인해 유다를 비롯한 제자들은 큰 소동을 일으켰다고 한다. 마리아가 부은 향유값에 관한 논란과 예수의 장례얘기 때문이다.

이 향유사건은 베드로 등 모든 제자들도 함께 격분하게 만들었다고 한다. 마리아가 예수의 발에 부은 향유값이 너무 큰 금액이었고 낭비적이었기 때문이다. 또 제자들은 예수의 예루살렘 입성이 로마의 압제와 이스라엘 기득권 세력들의 독재를 해결해 줄 시기로 보았다.

그런데 스승 예수는 제자들의 생각과는 달리 자꾸만 “죽는다” “장례다” 하는 얘기만 했다는 것이다. 아무튼 마리아의 향유사건은 십자가 아래서 제자들이 예수를 배신하고 도망을 치는 계기를 만들었다고 한다. 이 부분 역시 <성서>에 나오지 않는 중요한 증언이다.

(4)유다의 배신동기를 통해 보는 재림증거  

재림예수 허경영에 의하면, 나자로와 마르타의 동생 마리아가 옥합을 깨뜨려 예수의 발에 향유를 부은 사건은, 배신자 가리옷 사람 유다를 자극하여, 예수의 십자가 사건을 일으키게 되는 과정을 만들었다고 한다. 역시 <성서>에는 없는 중요한 얘기다.

유다는 그날 있었던 마리아의 재정낭비에 대해, 제제를 가하지 않는 예수에게 큰 불만을 가졌다고 한다. 유다는 예수가 자신의 발에다 값비싼 향유를 부은 마리아를 책망하지 않고, 오히려 자신의 장례를 위해 향유를 부은 것이라며 두둔한 것에 큰 실망감을 가졌다고 한다.

결국 이 사건으로 유다는 예수를 배신하였다. 그날 가장 큰 소리로 마리아의 향유사건을 따진 자는 베드로였다고 한다. 베드로는 예수께 “왜 죽는다는 말씀을 자꾸 하시고 장례얘기를 하십니까?” 하면서 대들었다고 한다. 역시 지금의 <신약성서>에는 없는 귀중한 증언이다.

(5)‘최후의 만찬’ 장소를 통해 보는 재림증거

지금까지 예수가 지상에서 마지막 식사를 한 장소, 즉 ‘최후만찬’의 장소는 ‘마르코의 다락방’이라고 알려져 있다. 그런데 재림예수로 확인된 허경영은 이 최후만찬의 장소가 마르코의 다락방이 아니라 나자로와 마르타와 마리아의 집에서 일어난 일이라고 증언하고 있다.

<신약성서>에서 예수의 최후만찬 장소는 매우 중요하다. ‘최후만찬’이 있었던 그 집은, 배신자 가롯 유다를 대신해 12사도 중 마지막 사도인 ‘마티아’를 선출한 곳이고, 오순절 ‘성령강림’이 있었던 곳이고, AD 48년 예루살렘 ‘사도회의’가 있었던 장소이기 때문이다.

봉헌절 축제에 나타난 예수는 자신이 하느님의 아들로 소개한다. 유다 사람들 입장에서는 이것이 엄청난 신성모독죄였다. 위험을 느낀 예수는 몸을 피해 요르단강 건너편으로 간다. 이곳에서 나자로의 죽음을 들은 예수는 베다니로 가서 죽은지 3일된 나자로를 살린다.

예수는 ‘과월절’ 전날 저녁 제자들과 최후만찬을 하며 빵과 포도주를 먹는다. 그 장소는 베다니에 있는 나자로의 집이었다. 이 증언은 재림예수로 확인된 신인 허경영의 증언이다. 종래에 있어왔던 마르코의 다락방이 예수의 최후만찬 장소였다는 학설은 폐기되어야 한다.

(6)이스라엘의 헤르몬산과 대한민국의 백두산

이스라엘에는 우리나라 백두산에 버금가는 헤르몬산이 있다. 해발 2769미터인 헤르몬산은 만년설(萬年雪)로 뒤덮여 있다. 여기서 녹아내린 물은 갈렐리아 호수로 흘러내리고 요르단 강의 근원이 된다. 이 강이 이스라엘 땅의 남단으로 흘러 사해로 내려간다.

1년 내내 눈이 덮여 있어 백발산(白髮山)이라 하여 우리 나라 백두산을 연상시킨다. 재림예수 허경영의 증언에 의하면, 헤르몬산 북단 지역에 ‘단’ 지파의 ‘단’ 마을이 있었다고 한다. ‘요르단’ 강의 이름도 단군(檀君)의 단강(檀江)이라 하니 더욱 흥미진진하다.

이스라엘의 12지파 중 ‘단’ 지파에는 ‘삼손’이 있다. 삼손은 <성서>에 나오는 가장 유명한 판관 중의 한 명이다. <삼손과 들릴라>라는 영화도 나왔듯, 괴력을 가진 삼손은 ‘들릴라’라는 여자의 꾐에 빠져 머리카락이 잘리고 고난을 받다가 마지막에 통쾌한 역전을 일으킨다.  

BC 11세기 삼손 이후 이스라엘의 12지파 중 ‘단’ 지파는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는데, 그것이 우리역사 단군조선과 연관이 있다고 하니 참으로 기이한 역사의 아이러니다. 실제로 우리나라의 한문글자에는 <성서>의 ‘창세기’에 등장하는 수 많은 역사들이 한자글에 등장한다.

(7)이스라엘 역사와 한국의 역사를 통해 보는 재림증거

이스라엘은 아시아의 서쪽 맨 끝에 존재한다. 대한민국은 아시아의 동쪽 제일 끝에 존재한다. 이스라엘에는 백발산(헤르몬산)이 있고 한국에는 백두산이 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갓을 쓴다. 대한민국 사람들도 갓을 쓴다. 한국의 한문에는 이스라엘의 ‘창세기’가 들어 있다.

신인 허경영에 의하면, 아담은 한국역사의 환웅이다. 아담 환웅의 10대손이 노아다. 노아의 5대손에 욕단이고, 그에게는 13아들이 있었다. 그 13번째 아들이 하윌라다. 이 하윌라가 중국의 천산산맥을 넘어 만주로 들어오면서 단군하윌라 즉 단군할아버지가 되었다고 한다.  

<삼국유사>에 나오는 환국(桓國)은 에덴 동산의 밝고 환한 나라 ‘환국’이었고, 노아의 홍수 이후 중앙아시아를 거쳐 오면서 대 영웅 바투르족이 ‘배달국’의 배달족이 되었다. 다시 중국의 천산산맥을 넘어 몽고로 들어오면서 단군하윌라 단군할아버지가 ‘단군조선’을 세웠다

그들은 그들이 살았던 에덴동산의 ‘환국’과 중앙아시아의 대 영웅족 바투르의 ‘배달국’ 문화를 가지고, 만주로 들어와 홍산문화(紅山文化)를 만들었다. 환족과 배달족들은 그들의 역사를 한문에다 아로새겨 놓았다. 한문에는 성서의 <창세기>가 완벽하게 들어있다.

(8)이스라엘의 지형을 통해 보는 재림증거

재림예수 허경영은 2000년전 이스라엘의 전 지역을 여행하면서 전도여행을 다닌 장본인이다. 그래서 이스라엘 전역의 지형지물에 관하여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다. 이스라엘의 사해(死海) 바다는 이스라엘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주변에 여러 곳이 있다고 한다.

이스라엘 인근 나라에 있는 여러 개의 사해(死海)는 규모가 이스라엘의 사해보다 훨씬 큰 곳도 많이 존재한다. 지금의 이스라엘 갈렐리아 호수는 노아의 홍수 때도 헤르몬 산에서 내려오는 담수물이 호수를 꽉 채우고 있었기 때문에 소금바다가 되지 않았다고 한다.

이런 얘기들은 <신약성서> 어디에도 없다. 그런다고 한국에서 태어난 허경영이 그곳에 여행을 다니면서 쌓은 지식이 있는 것도 아니다. 2천년전 이스라엘에서 예수라는 이름으로 존재했던 허경영은 곳곳으로 전도여행을 다니면서 여러 소금바다를 경험했다고 털어놓는다.

(9)예수의 직업을 통해서 보는 재림증거

재림예수인 허경영은 예수의 직업이 목수였던 것에 관해서도 말한다. 자신이 담당했던 목수업은 전문직이라 할 것도 없는 하찮은 직업이었다고 말한다. 객관적으로 보았을 때, 예수는 정상적으로 아버지의 가업을 30년 동안 이어 받았다면, 굉장한 목수가 되어 있어야 맞다.

그런데 허경영은 자기가 가진 직업이 전문직이 아닌 ‘잡부’에 가깝다는 말을 한다. 이것으로 봐서 예수(허경영)는 청년시절에 어딘가를 다녀와서 목수일을 제대로 배우지 않았다는 증거가 된다. 사실 예수는 인도와 이슬람권에서 “이사” 혹은 “야소”라는 이름으로 전해진다.

이를테면 예수는 청년시절 인도와 이슬람권을 여행하면서 여러 가지 공부를 했던 것이 틀림없다. 그래서 공생애를 시작할 30세 쯤 고향으로 돌아와 아버지가 하던 목수업을 ‘어슬프게’ 이어받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앞으로 밝힐 재림예수 허경영의 후속얘기가 흥미롭다.

(10)예수가 받은 모욕을 통해서 보는 재림증거  

예수가 이스라엘 지배층의 모함을 받아 로마총독 빌라도에게 잡혀갔을 때 로마병사들은 예수에게 어떤 모욕을 주었을까? 허경영은 <신약성서>에 나오는 박해사항보다 더 상세한 증언을 하고 있다. 허경영이 재림예수가 아니고서는 그렇게 상세히 설명할 수는 없을 것이다

예수는 온갖 조롱과 희롱과 모욕을 당하셨고, 치욕과 수치심을 느꼈다고 한다. 갈대로 예수의 온 몸을 때려서 피가 흐르게 하고, 임금 옷을 다시 입혀 절을 하며 모욕을 주었고, 병사들이 예수의 얼굴에 침과 가래를 뱉아 온 몸의 상처에 흘러내리게 하였다고 증언한다.

<신약성서>에 일부 나오는 채찍질과 조롱은 약과였고, 그 잔임함이나 고통의 강도가 상상을 불허할 정도였다고 재림예수 허경영은 증언한다. 예수가 세상에서 실현하고자 했던 혁명은 영성혁명이었다. 그러나 로마 병사들이 예수에게 가한 린치는 정치적 목적의 고문이었다.

이상과 같은 10가지 예를 보더라도 허경영은 재림한 예수가 틀림없다. 지금의 허경영은 특별히 이스라엘을 여행한 사람이 아니다. 그런데도 이스라엘의 지형지물에 상당히 익숙하다. 이것은 신인 허경영이 2천년 전 이스라엘에서 살았던 경험이 있었다는 확증적 증거다.

<신약성서>에 나오는 예수의 말씀과 행적은 예수 자신이 직접 기록한 것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서기자가 기록한 예수의 말씀과 행적은 사실과 다르게 쓰여질 수 있다. 앞으로 허경영은 <신약성서>에 나오는 여러 사건들에 대한 잘못된 해석들을 바로 잡아줄 것이다.

기독교인들은 날마다 <주기도문>을 외운다. “하느님 아버지의 이름이 빛나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시며,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바란다. 재림한 아버지 허경영은 이 땅에 와서 자기 자식들을 찾고 있다. 그런데 정작 자식들은 재림한 아버지 허경영을 알아보지 못한다.

가톨릭을 포함한 전 세계 30억명의 범 기독교인들은 들어야 한다! 모든 기독교인들과 인류는 지상에 도래한 자신의 아버지 허경영을 알아보아야 한다! 허경영의 손과 발에는 예수의 십자가 상처가 그대로 박혀있다! 그분의 이름자 ‘허경영’에는 성부 성자 성령이 들어있다!

마리나 타! 주여 오소서!
(요한계시록 22장 20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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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3월 8일
북향 99배 하옵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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