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佛教智慧修行文化

达摩祖师《安心法门》:原文+译文

by 明智 2024. 7. 26.
다모 조상 『안심법문』: 원문+ 번역

연꽃 곡
2024년 7월 17일 07:27 656명이 들었습니다.


다모조사 《안심법문》 ​​



【원문 】

매혹하는 사람은 법을 따르다. ,해시법은 사람을 쫓아라. ;

해독할 때 색을 찍는 것을 알다. ,색을 감각하는 시간에 빠졌다. ;

그러나 마음으로 각별히 자기 마음의 현산을 고려하는 자는 모두 꿈이다.

만일 인식심이 멸망하고 모든 생각처가 없으면 명정각이다.

​[번역] ​

사람이 아직도 혼란스러울 때 문제를 해결하고, 항상 방법을 찾아 쫓아간다. ​

깨달을 때,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사람을 쫓아오게 된다.

깨달을 때, 내면의 마음은 색체의 행동을 통제하고 있다. ​

혼란할 때, 색체의 모든 것이 내면의 마음을 통제하고 억제하고 있다.

​​​마음이 ‘자심현량’을 따로 계산하는 한, 모두 꿈의 거품이다.

마음의 공허함을 인식하고 어떤 생각도 일어나지 않을 때, 그것을 ‘정깨’라고 부른다. ​​​​​



【원문 】

질문 :

구름은 어떻게 자기 마음의 현량인가?

대답 :

모든 법이 있는 것을 보며, 자기가 없는 것을 보며, 자기 마음으로 계획하여 있는 것을 보며,

모든 법이 없는 것을 보고, 아무것도 없는 것은 자기가 없는 것은 아니며, 자기 마음으로 계획하여 아무것도 없는 것은 아니며

모든 법도 마찬가지로,

또한 자기의 생각으로 가지고 있고, 자기의 계획으로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번역] ​

질문 :

​‘자신현량’이란 무엇인가? ​  

답 :

어떤 사물의 존재를 본다, 그러나 사물의 존재는 사물 자체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자심”의 존재이다. ​​

어떤 사물도 존재하지 않는 것을 볼 수 있지만 사물의 존재는 사물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자심”이 생각한 존재가 존재하지 않는 것을 볼 수 있다. ​​

​심지어 모든 사물도 이렇듯, 모두 ‘자심’으로 존재하는 것이고, ‘자심’은 존재하지 않는다.



【원문 】

또 만일 사람이 모든 죄를 저지르고 자기의 법왕을 본다면, 그는 해방을 받을 것이다.

만일 일을 해내는 사람이 힘이 강하면,

중견법에 종사하는 사람은, 즉 어디든지 상식을 잃지 않는다.

문자해석자의 힘이 약하다면, 즉 일은 법이 깊다.

너의 여러 가지 운에서 뛰쳐나서 법계를 벗어나지 못할 줄 알았노라.

만일 법계로 법계에 들어가면, 그것은 미인이다.

모든 행위를 행하는 사람은 모두 법계심에서 나오지 않는다.

왜? 심체는 법계故이다.

​[번역] ​

​만일 한 사람이 모든 죄를 지었다면, 자기의 “자심” 즉 내면의 모든 것을 지배하는 “법왕”을 찾을 수 있다면 즉시 해방을 얻을 수 있다.

​​​​만일 상(授受)에 종사하면 해방을 얻으면 힘이 강해지면 언제든지 정성을 잃지 않는다. ​

문자에서 해방을 얻으면 힘이 약해지고, 수수와 동시에 법이 심어진다.

네가 어떤 종류의 작용을 하든지, 어떻게 뛰든지, 법계의 범위를 뛰어넘을 수 없다.

법계에서 법계로 들어가고 싶다면 불평하는 사람이다.

모든 행동은 법계심에서 분리될 수 없다.

왜? ​왜냐하면 마음의 본체가 법계이기 때문이다.



【원문 】

질문 :

세상 사람이 각종 학문에 대하여 어찌하여 도리가 없느냐?

대답 :

자기의 탓으로, 그러므로 말하지 말라. 자기도, 나도.

사람은 고난을 겪지 않고 기쁨을 겪지 않고 자기의 원인을 보지 못한다.

그러므로 고통과 기쁨을 알지 못하며, 자기의 죽음으로 인해 허물에 이르게 되리라.

자기가 아직 죽어도, 더 무엇이 죽지 않겠느냐?

​[번역] ​

질문 :

세상 사람들은 여러 가지 학문이 있는데, 왜 도리를 얻을 수 없는가? ​

답 :

​오직 ‘자기’만 보고 있기 때문에 도울 수 없다. 이 ‘자’는 ‘나’이다. ​​​​

올바른 결과를 수련하는 사람은 고난을 만나면 걱정하지 않고 기쁨을 만나면 기쁨을 느끼지 않는다는 것은 이미 ‘자신’을 볼 수 없는 이유 때문에 고난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

​‘자유’가 없기 때문에, 가장 높은 공허무공寂의 경계를 얻었다.

‘자신’은 그 자체를 멸망시킬 수 있는데, 그를 멸망시키지 못할 것이 무엇이 있습니까? ​



【원문 】

질문 :

말씀이 텅 빈데, 아, 누가 수련을 하는가?

대답 :

누구든지 수배해야 한다.

아무도 없다면, 수련할 필요가 없다.

누구든지 나도 마찬가지다.

만일 내가 없으면 모든 사물은 악이 생기지 않는다.

옳은 사람은 나 자신이고, 옳지 않은 것은 또한 존재한다.

범한 자는 나 자신을 범하였고, 아무것도 범하지 않는다.

즉 마음이 없는 것은 통달불의 길을 위한 것이다.

즉 물건이 보이지 않는 것이 명달의 도이다.

사물에 직통하여 그 근원을 알면 이 사람은 눈을 뜨게 한다.

​[번역] ​

질문 :

만일 모든 법이 공허하다고 말하면, 누가 더 수조를 올 것인가? ​

답 :

​‘누가’ 존재하는 데야 수교가 필요하며, ‘누가’ 존재하지 않으므로 수교가 필요하지 않다.

​이른바 ‘누가’, 즉 ‘나’. ‘나’의 존재가 없다면 어떤 사물을 직면할 때 옳고 그른 마음은 생기지 않는다.

​옳은 것은 ‘나’가 스스로 옳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사물 자체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

​부정확한 것은 ‘나’가 생각하는 부정확한 것이 아니라 사물 자체가 부정확한 것이다.

모든 것이 마음에서 비롯된 것을 알고 마음의 공허함을 아는 것은 ‘통달불도’이다. ​

사물에 직면하여 헛된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을 ‘다도’라고 부른다. ​

사물을 만나면 즉시 통통을 깨닫고 그 근원을 알면 이 사람의 현명한 눈이 열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원문 】

지혜로운 사람은 물건을 맡기지 않고 자기를 맡기는 것이 아니라, 즉 선택을 하지 않고 순종하는 것이 아니다.

어리석은 사람은 자기를 맡기지 않고 물건을 남기지 않는다면, 즉, 선택을 하거나 순종하지 않는다.

하나도 보이지 않는 것이니, 그 이름은 시도라. 한 가지가 안되요, 행로라고 불리는데요.

모든 곳에 마음이 없다면, 즉 행할 곳이 없다.

행법이 없다면, 바로 부처를 본다.

만일 사진을 볼 때, 즉 모든 곳에서 귀신이 났다.

죄를 짓고 지옥에 떨어진다.

법을 관찰하여 자유를 얻을 수 있다.

만일 기억을 보고 헤어지고 싶다면, 즉 찌꺼기 탕, 숯 등 일을 받게 된다면, 현생사상을 보게 된다.

​​법계성, 즉 니체성.

무기상분별, 즉 법계성.

​[번역] ​

지혜로운 사람은 “자신”의 자유로운 발전을 맡기지 않고 사물의 자연적인 발전을 맡기게 된다. ​​

​​​​​어리석은 사람은 사물에 ‘자신’(마음)의 개입을 맡기고 사물의 자연스러운 발전을 맡기지 않는다.

세상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것을 보면 ‘시도’라고 부른다. 아무것도 창조하지 않는 것은 ‘행길’이라고 불린다. ​​​​

​아무리 어디서든 ‘심이 없이’ 일을 하든지, 어느 곳도 창조하고 창조하지 않는 곳이다.

​이것이 바로 ‘무행법’, 즉 ‘불을 본다’.

만일 모든 곳에서 보는 것이 모두 형상이고, 이 형상에 집착한다면, 모든 곳에서 ‘악마’를 본다. ​

형상에 집착하면 지옥에 떨어질 것이다. 공법을 관찰하면 해방을 얻을 것이다. ​​

항상 머리의 판단으로 옳고 그름을 인식한다면, 옥수, 화탄 등 지옥의 고문을 받아 모든 생사상을 보게 될 것이다.

만일 법계성을 볼 수 있다면, 그것은 니바성을 볼 수 있다.

의식 없이 인식의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것은 ‘법계성’이다. ​



【원문 】

마음이 색이 없으니, 그러므로 존재하지 않는다.

사용하지 않고 폐지하지 않는다면, 그러므로 아무것도 없다.

사용하면 항상 비어있기 때문에 존재하지 않는다.

공허하고 자주 사용되므로 아무 것도 아니다.

【번역문] ​

‘심’은 형상형질이 아니기 때문에, 이 점에서 말하면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은 모든 것에 작용하고 결코 폐지되지 않으므로, 이 점에서 볼 때 그것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

​그것은 영원히 공허한 상태로 작동하고, 그래서 그것은 또 존재하지 않는다. ​​

​그것은 비록 아무것도 아니지만 모든 것에 끊임없이 작용할 수 있기 때문에, 그것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



【원문 】

칭찬하되:

마음속으로, 찾기 어렵다.

넓은 때는 법계에 널리 퍼져나니, 좁은 것도 바늘을 허용하지 않는다.

악을 보지 않고 원망을 일으키며 선을 보지 않고 부지런히 대처한다.

지혜를 포기하지 않고 어리석은 자들에 가까이 다가오고, 미혹을 품지 않고 깨달을 것이다.

도대에 이르면 과도하고, 불의 마음을 통통하면 밖으로 나간다.

만성과 동일하지 아니하며 초월한 이름이 조다.

​[번역] ​

마음은 찾지 못하니, 큰 말은 법계에 널리 퍼지고, 작은 말은 바늘도 받지 못한다.

​​​​나쁜 일을 보고 틈이 생기지 말고, 좋은 일을 보고 열심히 일하지 않는다. ​

​지혜를 버려서 어리석음에 가까워지는 것이 아니고, ​​혼란을 버리고 깨달음을 추구하다. ​

​도달하는 길은 관례를 초월하고, 통달하는 부처심은 관례의 측정을 초월한다.

사부나 성자와 같지 않고 초월적으로 독립하여 조사라고 불린다.




达摩祖师《安心法门》:原文+译文

采莲曲
2024年07月17日 07:27 656 listened


达摩祖师《安心法门》



【原文】

迷时人逐法,解时法逐人;

解时识摄色,迷时色摄识;

但有心分别计较自心现量者,悉皆是梦;

若识心寂灭,无一切念处,是名正觉。

【译文】

人还在迷惑的时候,解决问题,总会去追逐寻找方法;

开悟之时,解决问题的方法就会就会追逐人而来。

开悟的时候,是内在的心识在控制色身的行动行为;

迷惑的时候,是色身的一切在控制、牵制着内在的心识。

只要心还在分别计较“自心现量”的话,全都是梦幻泡影。

如果能认识到心的空寂,不升起任何念头的时候,这就叫做“正觉”。



【原文】

问曰:

云何自心现量?

答曰:

见一切法有,有不自有,自心计作有;

见一切法无,无不自无,自心计作无;

乃至一切法亦如是,

并是自心计作有,自心计作无。

【译文】

问:

什么是“自心现量”?  

答:

看到任何一件事物的存在,然而事物的存在并不是事物本身就存在,而是“自心”计作的存在;

看到任何一件事物的不存在,然而事物的不存在并不是事物本身就不存在,而是“自心”计作的不存在;

乃至一切事物都是这样的,都是“自心”计作存在,“自心”计作不存在。



【原文】

又若人造一切罪,自见己之法王,即得解脱。

若从事上得解者气力壮,

从事中见法者,即处处不失念;

从文字解者气力弱,即事即法者深。

从汝种种运为跳踉颠蹶,悉不出法界;

若以法界入法界,即是痴人;

凡有施为,皆不出法界心。

何以故?心体是法界故。

【译文】

假如一个人造作了一切罪过,只要他能寻找到自己的“自心”这个内在主宰一切的“法王”,立即就可以获得解脱。

如果从事上(授、受)获得解脱的话气力就壮,任何时候都不会失去正念;

从文字上获得解脱的话气力就弱,在授受的同时,法深深植入。

任凭你种种运作,怎样跳踉颠蹶,都跳不出法界的范围。

如果还想从法界进入法界,就是愚痴的人。

一切的行动,都离不开法界心。

为什么呢?因为心的本体就是法界。



【原文】

问曰:

世间人种种学问,云何不得道?

答曰:

由见己故,所以不得道;己者,我也。

至人逢苦不忧,遇乐不喜,由不见己故,

所以不知苦乐,由亡己故,得至虚无;

己尚自亡,更有何物而不亡也?

【译文】

问:

世间人有种种的学问,为什么不能得道呢?

答:

是因为只看见“己”的缘故,所以不得道。这个“己”,就是(相状色身的)“我”。

修成正果的人逢苦不忧,遇乐不喜,是因为已经看不到“己”的缘故,所以不知苦乐。

由于没有了“己”,才得到了至高虚无空寂的境界。

“己”尚且能够让它自己灭亡,还有什么东西不能让它灭亡呢?



【原文】

问曰:

说法既空,阿谁修道?

答曰:

有阿谁须修道。

若无阿谁,即不须修道。

阿谁者亦我也。

若无我者,逢物不生是非,

是者我自是,而物非是也;

非者我自非,而物非非也;

即心无心,是为通达佛道;

即物不起见,是名达道。

逢物直达,知其本源,此人慧眼开。

【译文】

问:

既然说诸法皆空,还有谁会来修道呢?

答:

有“谁”的存在才需要修道,既然没有“谁”的存在,就不须要修道了。

所谓的“谁”,也就是“我”。如果没有“我”的存在,在面对任何事物时,就不会产生是非对错的心念。

正确的,是“我”自认为的正确,而不是事物本身的正确;

不正确的,是“我”自认为的不正确,而不是事物本身的不正确。

知道一切源于心而又知道心的空寂,就是“通达佛道”。

面对事物不起妄念,就叫“达道”。

遇到事物立即明白通达,知其本源,说明这个人的慧眼开了。



【原文】

智者任物不任己,即无取舍违顺;

愚人任己不任物,即有取舍违顺。

不见一物,名为见道;不行一物,名为行道。

一切处无心,即作处无作处。

无作法,即见佛。

若见相时,即一切处见鬼;

取相故,堕地狱;

观法故,得解脱;

若见忆想分别,即受镬汤炉炭等事,现见生死相。

若见法界性,即涅盘性。

无忆相分别,即是法界性。

【译文】

有智慧的人任由事物的自然发展而不任由“己”的自由发展,这就是没有取舍违顺;

愚痴的人任由“己”(头脑)对事物的干预而不任由事物自然发展,这就是有“取舍违顺”。

看世界不着一物,就叫“见道”;不造作任何事物就叫“行道”。

不管在任何地方都“无心”做事,任何地方都是既造作又没有造作的地方。

这就是“无作法”,就是“见佛”。

如果在所有地方看到的全是相状,而执着于此相状,就是在所有的地方都“见鬼”。

执取相状,就会堕入地狱;观照空法就会获得解脱。

如果总是以头脑的判断认知对错,就会受镬汤、炉炭等地狱酷刑,让你见到一切生死相。

如果能见到法界性,就是见到涅盘性。

不用意识判断认知的是非对错,就是“法界性”。



【原文】

心非色,故非有。

用而不废,故非无。

用而常空,故非有。

空而常用,故非无。

【译文】

“心”不是相状形质的,所以,从这点上讲是不存在的。

它作用于一切而永不废止,所以,从这一点上讲它又并不是不存在的。

它永远以空无的状态运转,所以,它又是不存在的。

它虽然空无却能不停地作用于一切,所以,它又不是不存在的。



【原文】

即说颂曰:

心心心,难可寻。

宽时遍法界,窄也不容针。

亦不睹恶而生嫌,亦不观善而勤措。

亦不舍智而近愚,亦不抱迷而就悟。

达大道兮过量,通佛心兮出度。

不与凡圣同躔,超然名之曰祖。

【译文】

心是寻不到的,大的话遍法界,小的话针也容不下。

不因为看到坏事产生罅隙,不因为看到善事而勤于做事。

不因为舍弃智慧而近于愚蠢,不因为抛弃迷惘而追求悟到。

达到大道超越了常规,‌通达佛心超越了常规的度量。

‌不与凡夫和圣人相同,‌超然独立,‌因此被称为祖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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