内心保持空灵状态,是智慧的显现,唯有处于这种状态,才可亲见佛性。空灵既是起点,又是终极。
一一万行法语
내면의 공영상태를 유지하는 것은 지혜의 현현이며, 오직 이런 상태에 있을 때에만 부처성을 직접 볼 수 있다.에테리얼은 출발점이자 궁극적 인 것입니다.
愿力是一个学佛人首先必备的
愿力是一个学佛人首先必备的。倘若你学佛多年,愿力还没有生起来,没有确定,你是不可能拥有智慧、悲心、气魄和毅力的。愿力就如同我们的人生目标、人生定位和人生方向。人生目标都没有,与之相应的定力、智慧、心量也不会有。因为当你有了明确的愿力,你的心量必然会随之打开。
你有大愿力,却没有大心量,你的愿力怎么可能实现呢?愿力和你的心量、毅力、奉献精神等等,必须在同一条水平线上,同一个层次上。不可能你的愿力很大,心量却很小。你有多大的愿力,你的心量就应该有多大,悲心就有多重,智慧就有多高,定力就有多强。
之所以在座的有些人的心量那么狭小,就是因为你从来没有明确你学佛的愿力。你以为你有很多愿力,实际上你所谓的愿力都是欲望。欲望是为自己而发的,愿力是为众生而发的,它们之间的根本区别就在这里。为自己而发,你永远是一个索取者;为众生而发,你永远是一个施予者。倘若你的愿力没有生起来,没有明确的定位,即便佛菩萨来了,也帮不了你。
——万行法师【《心灯》| 做一个爱的施与者,才是富有的人】
소력은 불교를 배우는 사람이 먼저 필요한 것이다.
소망력은 불교를 배우는 사람이 우선 필수적이다.만약 당신이 수년 동안 불교를 공부하고 있고, 소원이 아직 태어나지 않았다면, 확실하지 않다면, 당신은 지혜와 비심, 기포와 끈기를 가질 수 없습니다.소망은 우리의 삶의 목표, 삶의 위치 및 삶의 방향과 같습니다.인생 목표도 없고 그에 상응하는 정력, 지혜, 마음량도 없을 것이다.왜냐하면 당신이 명확한 의지를 가지고 있을 때, 당신의 마음의 양은 틀림없이 열릴 것이기 때문이다.
당신은 큰 소원을 가지고 있지만 큰 마음량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당신의 소원은 어떻게 실현 될 수 있습니까?당신의 힘과 당신의 마음, 인내, 헌신 등은 같은 수평선, 같은 수준에 있어야합니다.너의 의력은 크지만 마음량은 작을 수는 없다.네가 얼마나 큰 소지가 있을지라도 너의 마음량은 얼마나 커야 하며, 비심은 얼마나 무겁고, 지혜는 얼마나 높고, 결심력은 얼마나 강해야 한다.
이 자리에 있는 몇몇 사람들의 마음이 그렇게 좁은 이유는 당신이 불교를 배우려는 당신의 소원을 결코 명확히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당신은 당신이 많은 소원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 당신이 소위 소원을 가지고있는 것은 욕망입니다.욕망은 자신을 위해 발산되고, 욕망은 모든 존재들을 위해 발산되며, 그들 사이의 근본적인 차이점은 여기에 있습니다.너 자신을 위해 떠나, 당신은 항상 구하는 사람이며, 모든 존재들을 위해 떠나, 당신은 항상 주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만약 당신의 소원이 태어나지 않았다면, 명확한 위치가 없다면, 부처님들이 오더라도 당신을 도울 수 없습니다.
- - 만행법사 '심등'|사랑하는 사람이 되는 것은 부자가 되는 것이다.
心性是一
心性是一,不是二,为明心性方便故,方把心性分为二。心是苗,性为根,无根,也无苗,无苗,不见根,这叫做:顺苗找到根,依根而生苗,根苗原本是一体。
性是生命的根源(苗),和光同尘,此灭,又生彼。生灭仅是现象,根(性)从未生灭。万物之母即是性,逍遥法外,出入生死的还是性。
性为体,心为相,体相合和,便是用。依用为相,才显体,体、相、用不需分。不用,不见心(相),更不能见性(体);处处用,处处见;时时用,时时见。会者,处处会;识者,处处识;不会、不识者,理未通;能会、能识者,还需用功。
心如明镜时,对自己的每一个起心动念都看得清清楚楚,既能看见起心动念,也就意味着能守住自己的心,能守住心,也就做得了主。
起心动念为影子,心如明镜,无影无镜,无镜不影。心性的关系犹如镜与影的关系:镜外无影,影外无镜。佛与魔的关系亦复如是。
但用言说,皆非实义。心性本自空,何来体相用?说有说空,皆你需用。若能识镜遣影,宇宙万物皆我性之现也。
禅宗,至简至易,与日常生活中每件事皆可修禅。一件事物的相用,皆是性的显现,也是六通齐发。禅虽顿悟,更重渐修。今日顿悟,乃因昔日渐修;今日渐修,则明日顿悟。
禅是无声之教,重在落实于日常生活中,若言顿悟,或言慧开,而未能生用者,皆非悟与开。修在事物中,悟在事物中,用在事物中,体现在事物中,乃佛法之精髓也。
成功的人与事,是用事实体现出来,而非靠言语、智慧或才干……
摘自万行大和尚著作《心中月》 2、如是明心 第29~30页 [合十][合十][合十]
마음 속 은 하나 다 .
마음의 성 은 하나 이지 두 개가 아니다 . 마음의 성 을 명 명 하기 위해 편 리 하기 때문에 마음의 성 을 두 개 로 나 눕 시다 .심 은 묘 목 이고 성 은 뿌 리 이며 뿌 리가 없고 묘 목 도 없고 묘 목 도 없고 뿌 리가 없어 뿌 리를 보지 못 하며 이것을 순 묘 목 이 뿌 리를 찾 으며 뿌 리에 따라 묘 목 이 자라 며 뿌 리 묘 목 은 원래 일 체 라고 한다 .
성 은 생명의 근 원 (묘) 이며 빛 과 먼 지 이며 이것은 사라 지고 또 다른 것을 낳 는다 .생 멸 은 현 상 일 뿐 , 뿌 리 (성) 는 결코 생 멸 하지 않는다 .모든 것의 어머니는 성 이며 , 처벌 받지 않으며 , 생 사 또는 성 에 출 입 합니다 .
성 은 몸 이고 마음은 상 이며 몸 상 과 화 합 하며 바로 사용 이다 .사용 에 따라 상 으로 해야 몸을 드러 내 며 체 , 상 , 사용 은 분 할 할 필요가 없다 . " 사 용 하지 않고 , 마음 (상) 을 보지 못하고 , 성 (체) 을 더 이상 보지 못하고 , 곳곳 에서 사용 하며 , 곳곳 에서 볼 수 있으며 , 시 시 로 사용 하며 , 시 시 로 볼 수 있다 . "아는 자는 어디서 나 아는 자 이며 , 아는 자는 어디서 나 아는 자 이며 , 모르는 자는 이 리가 통 하지 않고 , 아는 자 이며 , 아는 자는 또 노력 해야 한다 .
마음이 거울 과 같 을 때 , 자신에 대한 모든 마음 동 념 을 모두 뚜 렷 하게 볼 수 있으며 , 마음 동 념 을 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마음을 지키 고 , 마음을 지키 고 , 주님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
마음을 움직 여 그림 자를 생각 하면 마음은 거울 처럼 그림 자가 없고 거울 도 없고 거울 도 없고 그림 자가 없다 .마음의 관계는 거울 과 그림 자의 관계 와 같다 : 거울 밖 에는 그림 자가 없고 , 그림 자 밖 에는 거울 이 없다 .부 처 와 악마 의 관계 도 마찬가지 다 .
그러나 말 로는 모두 실 의 가 아니다 .마음이 본 래 는 공 허 하니 , 어찌 몸 과 함께 쓰 겠느냐 ?공 허 한 말 들이 있으면 모두 네가 필요로 한다 .거울 을 볼 수 있다면 우주의 모든 것은 나의 본 성 이다 .
일상 생활 에서 모든 것을 쉽게 수행 할 수있는 Zen .한 사 물의 상호 사 용 은 모두 성 적인 현 현 이며 또한 육 통 이 함께 발 하는 것이다 .진 은 깨달 음 에도 불구하고 , 더 중 하고 점차 수 습 한다 .오늘 을 깨달 은 것은 어제 부터 점차 수 련 되기 때문 이며 , 오늘 부터 점차 수 련 하면 내일 은 깨달 을 것이다 .
그러나 일상 생활 에 있어서 , 그 (것) 들은 일상 생활 에 있어서사 물 속에서 수 련 하고 , 사 물 속에서 깨달 으며 , 사 물 속에서 사용 하며 , 사 물 속에서 구현 되는 것이 불 법 의 본질 이다 .
성공 한 사람과 일은 말 이나 지혜 또는 재능 이 아닌 사실 로 구현 됩니다 .
만 행 대 화 승 의 저 서 ≪ 마음 속 의 달 ≫ 에서 발 췌 2. 마음이 밝 으면 29 ~ 30 페이지 [ 잡 담 ] [ 잡 담 ] [ 잡 담 ] [ 잡 담 ]
为什么说“明心见性”
为什么说“明心见性”,而不说“见心明性”呢?对于初学佛者,佛门里通常把心分为真心与妄心。但对于大成就者,真心与妄心是同一个东西。想知道乃至明白自己的真心,需要妄心的显现。尤其在静坐中,当杂念特别多,很散乱时,这个境界指的就是妄心。有一天你明心见性了,会发现:散乱的杂念也是真心在起妙用。但这个境界是功夫,不是理论。如果你的功夫达到了一定程度,会感受到“心”与“性”是一不是二。既然如此,为什么祖师要把它分成两个呢?把它一分为二来讲,大家会更明白。
如果用“理”和“事”来讲,明心偏重于理,见性偏重于“事”,也就是功夫。如果你是从理走到功夫上,再从功夫上走出来,你会感到理和事原本是一体。如果不是这样(理→事→走出来),理还是理,事还是事。
大家可能会问:“理和事怎么衔接?怎么运用?”这就涉及到大家经常提的一个问题:是闭门修炼自己,还是走出去修炼自己?这是一个让出家和在家修行人都疑惑的问题。有的人认为应该彻底地走出去,通过做人做事来修炼自己。有的人则主张与世隔绝,把自己完全封闭起来修炼。实际上你会用功,两种方式是一样的;你不会用功,哪种方法你也用不上功。
————摘自东华禅寺方丈万行大和尚《降伏其心》
왜 ' 명심성 ' 이라고 하는가.
왜 "심은 분명하다" 고 말하며 "심은 분명하다" 고 말하지 않습니까?초심자 불교에 대하여 불문에서는 보통 마음을 진심과 망심으로 나눕니다.그러나 위대한 성취자에게는 진실과 망심은 같은 것이다.자신의 진심을 알고 심지어 이해하려면 망심의 현상이 필요하다.특히 명상 중에 잡념이 특히 많고 산란할 때 이 경계는 바로 망심을 가리킨다.어느 날 당신은 성을 명확하게 알게 될 것입니다 : 산란한 잡념도 진실한 마음이 묘하게 작용하고 있습니다.그러나 이 경계는 이론이 아니라 쿵푸이다.만약 당신의 功夫 가 어느 정도에 도달한다면, 당신은 "심" 과 "성" 이 둘이 아니라는 것을 느낄 것이다.그렇다면 왜 조상은 그것을 두 개로 나누었을까?그것을 두개로 나누면 더 이해할 수 있다.
만약 "리" 와 "사" 로 말하면 명심은 리에 편중하고 시성은 "사" 에 편중하며 바로 공부이다.만약 당신이 리에서 공부로 가서 다시 공부에서 나오면, 당신은 리와 일이 원래 하나라는 것을 느낄 것이다.만약 그렇지 않다면, 그것은 여전히, 그것은 여전히, 그것은 여전히, 그것은 여전히.
"이리와 일은 어떻게 연결될 수 있습니까? " 라고 물었을 것입니다.어떻게 사용합니까? "이것은 여러분이 자주 제기하는 질문과 관련이 있습니다: 문을 닫고 자신을 수련해야 합니까, 아니면 나가서 자신을 수련해야 합니까?이것은 가정과 가정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혼란스럽게하는 문제입니다.어떤 사람들은 철저히 나가서 사람이 되고 일을 함으로써 자신을 수련해야 한다고 생각한다.어떤 사람들은 세상으로부터 고립되어 자신을 완전히 닫고 수련한다고 주장한다.사실, 당신은 연습을 할 것이고, 두 가지 방법은 동일합니다; 당신은 연습을 할 수 없으며, 어느 방법으로든 연습을 할 수 없습니다.
- - - 동화선사 장장 만행대화승의 ≪ 그 마음을 항복 ≫ 에서 발췌
每个人只要学会看住自己的心
每个人只要学会看住自己的心,世间万象自然各归其位,各行其道。管住了自己的心,就意味着管住了世间万象,因为我们的心才是根本,世间万象只是心的显现。
————万行法语
모든 사람은 자신의 마음을 지켜보는 법을 배워야 한다.
모든 사람이 자신의 마음을 지켜보는 법을 배우기만 하면 세상 만상은 자연스럽게 각자의 자리로 돌아가 각자의 길을 따라간다.자신의 마음을 통제하는 것은 세상의 만상을 통제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마음이 근본이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만상은 단지 마음의 현현일 뿐입니다.
- - - - 만행
万行佛佛佛法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