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佛教智慧修行文化

[스크랩] 의심하는 마음이 흙이 되어 가로막고, 임제록 2

by 明智 2008. 2.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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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를 배우는 벗들이여! 바로 지금 눈앞에서 호젓이 밝고 역력하게 듣고 있는 이 사람은 어디를 가나 막힘이 없고 시방세계를 꿰뚫어 삼계에 자유 자재한다. 온갖 차별된 경계에 들어가도 그 경계에 휘말리지 않는다. 117쪽

  그대들이 만약 나고 죽음과 가고 머무름을 벗어나 자유롭기를 바란다면 지금 법문을 듣는 그 사람을 알도록 하여라. 이 사람은 형체도 없고 모양도 없으며, 뿌리도 없고 바탕도 없으며 머무는 곳도 없다. 활발발하게 살아 움직이고, 수만 가지 상황에 맞추어 펼쳐진다. 그러나 그와 같은 작용에도 정해진 곳이 없다. 그러므로 찾을수록 더욱 멀어지고 구할수록 더욱 어긋난다. 그것을 일러 비밀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129쪽   

도를 배우는 벗들이여! 그대들은 이 꿈 같고 허깨비 같은 몸뚱이를 잘못 알지 말라. 머지않아 머뭇거리는 사이에 곧 덧없음(무상, 죽음)으로 돌아갈 것이다. 그대들은 이 세계 속에서 무엇을 찾아 해탈을 하겠느냐? 그저 밥 한술 찾아먹고 누더기를 꿰매며 시간을 보내는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선지식을 찾아 참문하는 일이다. 그럭저럭 즐거운 일이나 좇아 지내지 말라. 시간을 아껴라. 순간순간 덧없이 흘러가서 크게 보면 지 수 화 풍이 흩어지는 것이고, 미세하게는 생 주 이 멸의 네 가지 변화에 쫓기고 있다.

 

도를 배우는 벗들이여! 지금으로서 가장 중요한 것은 네 가지 지수화풍과 생주이멸의 형상 없는 경계를 잘 알아서 그 경계에 휘말리지 않도록 하는 일이다. 131-132쪽

  

그대들의 한 생각 의심하는 마음이 흙이 되어 가로막으며, 한 생각 애착하는 마음이 물이 되어 빠지게 하며, 한 생각 기뻐하는 마음이 바람이 되어 흔들리게 하는 것이다. 만약 이렇게 알아낼 수 있다면 경계에 끄달리지 않고 가는 곳마다 경계를 활용할 것이다.

 

동쪽에서 나타났다가 서쪽으로 사라지고, 남쪽에서 나타났다가 북쪽에서 사라지고, 가운데서 나타났다가 가장자리에서 사라지고, 가장자리에서 나타났다가 가운데서 사라진다. 땅을 밟듯 물을 밟고, 물을 밟듯 땅을 밟는다. 어째서 그런가 하면 사대육신은 꿈과 같고 허깨비 같은 줄 통달하였기 때문이다. 134쪽

 

 

그대들의 한 생각 차별 없는 빛이 어디에나 두루 비치는 것이 진짜 보현보살이고, 그대들의 한 생각 마음이 스스로 결박을 풀 줄 알아서 어딜 가나 해탈하는 그것이 바로 관음보살의 삼매법이다. 서로 주인도 되고 벗도 되어 나올 때는 한꺼번에 나오니 하나가 셋이고 셋이 하나다. 이와 같이 알 수 있다면 비로소 경전에 설해져 있는 가르침을 잘 보는 것이다.   140쪽

  

그대들이 지금 바로 작용하는 이것을 믿기만 하면 아무런 일이 없다. 그대들의 한 생각 마음이 삼계를 만들어내고 인연을 따라 경계에 끄달려서 육진경계로 나누어진다. 그대들이 지금 응하여 쓰는 그 곳에서 무슨 모자람이 있겠는가?

 

한 찰나 사이에 깨끗한 국토에도 들어가고 더러운 국토에도 들어가며, 미륵의 누각에도 들어가고 삼안국토(三眼國土)에도 들어가서 곳곳을 다니지만 오직 텅 빈 이름뿐이다. 151쪽

  

옛 사람이 이르기를, '길에서 도를 아는 사람을 만나거든, 무엇보다 도에 대해서 말하지 말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말하기를, '만약 누구라도 도를 닦으면 도는 행하여지지 않고 도리어 수만 가지의 삿된 경계들이 다투어 생겨난다. 지혜의 칼을 뽑아들면 아무것도 없다. 밝은 것이 나타나기 전에 어두운 것이 밝아진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또 옛 사람이 말하기를, '평상의 마음이 바로 도다'라고 한 것이다.  167쪽

  

대덕아! 무엇을 찾느냐? 지금 바로 눈앞에 법문을 듣는 그 사람, 아무것도 의지하지 않은 무의도인(無依道人)은 너무도 분명하고 결코 부족한 것이 없다. 그대들이 만약 할아버지 부처님(祖佛)과 다르지 않기를 바란다면 다만 이와 같이 보면 된다. 의심하여 그르치지 말라. 그대들의 순간순간의 마음이 다르지 않음을 이름하여 살아있는 할아버지(活祖)라 한다. 마음이 만약 다르면 성품과 형상이 다르게 되지만 마음이 다르지 않기 때문에 성품과 형상이 다르지 않다. 169쪽

  

대저 부처님의 육신통이란 그런 것이 아니다. 물질의 경계에 들어가지만 물질의 미혹함을 받지 않고, 소리의 경계에 들어가지만 소리의 미혹함을 받지 않으며, 냄새의 경계에 들어가지만 냄새의 미혹함을 받지 않고, 맛의 경계에 들어가지만 맛의 미혹함을 받지 않는다. 감촉의 경계에 들어가지만 감촉의 미혹함을 받지 않고, 법의 경계에 들어가지만 법의 경계의 미혹을 받지 않는다.

 그러므로 색 성 향 미 촉 법 이 여섯 가지가 모두 텅 비었음을 통달하고 있다. 어디에도 매이지 않는 무의도인을 속박할 수 없다. 비록 오온의 번뇌로 이루어진 몸이지만 바로 이것이 땅으로 걸어 다니는 신통(地行神通)이니라.    179쪽  

오직 도를 배우는 벗들의 눈앞에 법을 듣고 있는 사람이 있다. 그 사람은 불에 들어가도 타지 않고 물에 들어가도 빠지지 않으며, 삼악도의 지옥에 들어가도 마치 정원을 구경하며 노는 듯하고, 아귀 축생에 들어가도 그 업보를 받지 않는다. 

 

분별하여 모양을 취하느라 헛수고하지 않으면 잠깐 사이에 도를 얻을 것이다. 184쪽

  

도를 배우는 벗들이여! 그대들 눈앞에서 작용하는 이놈이 바로 할아버지 부처님과 다르지 않다. 왜 믿지 않고 밖에서 찾는가? 착각하지 말라. 밖에도 법이 없으며 안에도 또한 얻을 것이 없다. 그대들은 산승이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듣는 것보다는 모든 생각을 쉬어서 아무 일 없이 지내는 것이 차라리 낫다.   200쪽

  

제방에서 온 그대들은 모두가 마음이 있다. 부처를 구하려고 하며, 법을 구하려고 하며, 해탈을 구하여 삼계를 벗어나려고 한다. 어리석은 이들아! 그대들이 삼계를 벗어나서 어디로 가려고 하는가? 부처와 조사란 보기 좋은 올가미로 만든 이름과 글귀일 뿐이다.

 

그대들은 삼계가 무엇인지 알고 싶은가? 지금 그대들이 법문을 듣고 있는 그 마음을 떠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대들의 한 생각 탐내는 마음이 욕계(慾界)이고, 한 생각 성내는 마음이 색계(色界)며, 한 생각 어리석은 마음이 무색계(無色界)다. 이 삼계는 바로 그대들의 집 속에 있는 살림살이들인 것이다. 삼계가 스스로 '내가 바로 이 삼계요'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눈앞에서 아주 분명하게 만물을 비추어 보고 세계를 가늠하는 그 사람이 삼계라고 이름을 붙인 것이다.   203쪽

  

그대들이 만약 쉬기만 하면 그대로가 곧 청정법신의 세계다. 그대들이 한 생각도 나지 않으면 곧 보리수에 올라 삼계에서 신통변화하여 마음대로 화신의 몸을 나타내리라. 그래서 법의 기쁨과 선의 즐거움으로 몸의 광명이 저절로 빛날 것이다. 옷을 생각하면 비단 옷이 천 겹으로 걸쳐지고, 밥을 생각하면 백 가지 진수성찬이 그득히 차려지며, 다시는 뜻밖의 병이나 가난으로 오는 병에 걸리는 일도 없을 것이다. 보리는 어떤 주처가 없다. 그러므로 얻을 것도 없느니라. 206쪽

  도를 배우는 벗들이여! 대장부가 또 무엇을 의심하는가? 눈앞에서 작용하는 이가 다시 또 누구인가? 잡히는 대로 쓰며 이름에 집착하지 않는 것이 심오한 뜻이다. 이와 같이 볼 수 있다면 싫어할 것이 없는 도리이다. 옛 사람이 말하기를 '마음은 만 가지 경계를 따라 흘러가지만 흘러가는 그 곳이 참으로 그윽하여라. 마음이 흘러가는 그 곳을 따라 성품을 깨달으니 기쁨도 없고 근심도 없도다'라고 하였. 207쪽   큰 스님들이여! 산승이 밖에는 법이 없다고 말하면 공부하는 이들이 알아듣지 못하고 곧 안으로 알음알이를 지어서 벽을 보고 앉아 혀를 입천장에 붙이고 가만히 움직이지 않고 있다. 그리고는 이것을 조사문중의 불법이라 여기는데 크게 잘못 아는 것이다. 그대들이 만약 움직임이 없는 청정한 경계를 옳다고 여긴다면 그대들은 저 무명(無明)을 주인으로 잘못 아는 것이다. 옛 사람이 이르기를, '깊고 깊어 캄캄한 구덩이는 참으로 무섭고 두렵다'라고 하였는데, 이것을 두고 한 말이다.   217족  

  

그대들이 만약 움직이는 것을 오인해서 옳다고 한다면 온갖 초목들도 다 움직일 줄 아니 그것도 응당 도이리라. 그러므로 움직이는 것은 바람의 성질이고 움직이지 않는 것은 땅의 성질이다. 움직이는 것과 움직이지 않는 것이 모두 다 고정된 자성이 없다. 그대들이 만약 움직이는 곳에서 그것을 붙잡으려 하면 그것은 움직이지 않는 곳에 서 있다. 또 그대들이 만약 움직이지 않는 곳에서 그것을 붙잡으려 하면 그것은 움직이는 곳에 서 있다. 비유하자면 마치 물 속에 있는 물고기가 물결을 치면서 뛰어오르는 것과 같다. 큰 스님들이여, 움직임과 움직이지 않음이 두 가지 경계이다. 의지함이 없는 도인(無依道人)이라야 움직임도 쓰고 움직이지 않음도 쓴다.   219쪽

 

출처 : 心
글쓴이 : 누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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