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_DAUM->
<임제록 강설> (무비스님 해설, 2005년 불광출판부 간)에서
"붉은 몸뚱이에 한 사람의 무위진인(無位眞人)이 있다. 항상 그대들의 얼굴을 통해서 출입한다. 아직 증거를 잡지 못한 사람들은 잘 살펴보아라."
그 때에 한 스님이 나와서 물었다.
"어떤 것이 무위진인입니까?"
임제 스님이 법상에서 내려와서 그의 멱살을 꽉 움켜잡고 "말해 봐라. 어떤 것이 무위진인인가."
그 스님이 머뭇거리자 임제 스님은 그를 밀쳐버리며 말했다.
"무위진인이 이 무슨 마른 똥막대기인가" 라고 하시고는 곧 방장실로 돌아가 버렸다. 43쪽
임제 스님이 법상에 오르자, 한 스님이 물었다.
"어떤 것이 제일구입니까?"
임제 스님이 말씀하였다.
"삼요(三要)의 도장을 찍었으나 붉은 글씨는 그 간격이 좁아서 숨어 있으니, 주객이 나누어지려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다. "
그 스님이 또 물었다.
"어떤 것이 제이구입니까?"
임제 스님이 말씀하였다.
"묘해(문수)가 어찌 무착선사의 물음을 용납하겠는가마는 방편상 어찌 뛰어난 근기(무착)를 저버릴 수 있으랴."
그 스님이 또 물었다.
"어떤 것이 제삼구입니까?"
임제 스님이 말씀하셨다.
"무대 위의 꼭두각시 조종하는 것을 잘 보아라. 밀었다 당겼다 하는 것이 모두 그 속에 사람이 있어서 하는 것이다." 61쪽
요즘 불교를 배우는 사람으로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참되고 바른 견해를 구하는 일이다. 만약 참되고 바른 견해만 얻는다면 나고 죽음에 물들지 않고 가고 머무름에 자유로워 수승함을 구하지 않아도 수승함이 저절로 온다. 74쪽
도를 배우는 여러 벗들이여! 산승의 견해에 의지한다면 그대들도 석가와 더불어 다름이 없다. 오늘 여러 가지로 작용하는 곳에 모자라는 것이 무엇인가? 여섯 갈래(眼 耳 鼻 舌 身 意)의 신령스런 빛이 잠시도 쉰 적이 없다. 만약 이와 같이 이해한다면 다만 한평생 일 없는 사람일 뿐이다. 79쪽
대덕아! 그대들은 또한 그림자를 조종하는 사람을 확실히 알라. 이것이 모든 부처님의 근본이다. 그렇게 되면 모든 삶의 모습(一切處)이 도를 닦는 이들의 돌아가 쉴 곳이다. 그대들의 사대(지 수 화 풍)로 된 이 육신은 설법을 하거나 법을 들을 줄 알지 못한다. 비 위 간 담도 설법을 하거나 법을 들을 줄 알지 못한다. 허공도 설법을 하거나 법을 들을 줄 알지 못한다. 그렇다면 무엇이 설법을 하고 법을 들을 줄 아는가? 그것은 그대들 눈앞에 역력하고 뚜렷한 아무 형체도 없이 홀로 밝은 이것이 바로 설법을 하고 법을 들을 줄 안다. 만약 이와 같이 볼 줄 안다면 곧 할아버지 부처님과 더불어 다르지 않느니라. 85쪽 다만 모든 시간 속에 전혀 간격이 없어서 눈으로 보는 것이 모두 다 그것이지만, 그러나 감정이 생겨서 지혜가 막히고 생각이 변하여 본바탕과는 달라졌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삼계에 윤회하여 가지가지 고통을 받게 된다. 만약 산승의 견해로 본다면 깊고 깊은 경지가 아닌 것이 없고 해탈 아닌 것이 없다. 87쪽
도를 배우는 벗들이여! 마음의 작용은 형상이 없어서 시방세계를 관통하고 있다. 눈에 있을 때는 보고, 귀에 있을 때는 들으며, 코에 있을 때는 냄새를 맡고, 입에 있을 때는 말을 하며, 손에 있을 때는 잡고, 발에 있을 때는 걸어 다닌다. 본래 이 하나의 정밀하고 밝은 것(一精明, 一心)이 나누어서 우리 몸의 여섯 가지 부분과 화합하였을 뿐이다. 한 마음마저 없는 줄 알면 어디서든지 해탈이다. 89쪽
무엇이 법인가? 법이란 마음의 법이다. 마음의 법은 형상이 없어서 온 시방법계를 관통하고 있어서 눈앞에 그대로 작용하고 있다. 그런데 사람들이 그러한 사실을 철저하게 믿지 못하고서 다만 명칭을 오인하고 글귀를 오인해서 문자 속에서 구하고 있다. 불법을 생각으로 헤아려 이해하려고 하니 하늘과 땅의 차이로 멀리 달라져 버렸다. 104쪽
도를 배우는 벗들이여! 잡으면 그대로 쓸 뿐 다시 무슨 이름을 붙이지 말아야 한다. 그것을 일컬어 깊은 뜻(玄旨)이라고 한다. 107쪽 도를 배우는 벗들이여! 불법은 애써 공을 들여서 하는 것이 아니다. 그저 평상대로 아무 일 없는 것이다. 똥 싸고 오줌 누며, 옷 입고 밥 먹으며, 피곤하면 눕는 것이다. 어리석은 사람들은 나를 비웃겠지만 지혜로운 이는 알 것이다. 옛 사람이 말하기를 '자신 밖을 향해서 공부하는 사람은 모두가 어리석고 고집스런 놈들이다'라고 하였다. 109쪽
그대들이 어디를 가나 주인이 된다면 서 있는 곳마다 그대로가 모두 참된 것이 된다. 어떤 경계가 다가온다 하여도 끄달리지 않을 것이다. 111쪽
그대의 의심하는 그 한 생각이 바로 마군이다. 그대가 만약 만법이 본래 태어남이 없는 이치를 통달하면 마음은 환영과 같아지리라. 다시는 한 티끌 한 법도 없어서 어딜 가나 청정하리니 이것이 부처다. 그러나 부처와 마군이란 깨끗함과 더러움의 두 가지 경계다.
산승의 견해에 의한다면 부처도 없고 중생도 없으며, 옛날도 없고 지금도 없어서 얻을 것은 바로 얻는다. 오랜 세월을 거치지 않는다. 닦을 것도 없고 깨칠 것도 없으며, 얻을 것도 없고 잃을 것도 없어서 모든 시간 속에서 더 이상 다른 법은 없다. 116쪽
'佛教智慧修行文化'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밀라레빠 / 밀라레빠의 생애 2장 2, 3장, 역자 후기 - 책 (0) | 2008.02.19 |
---|---|
[스크랩] 밀라레빠 / 밀라래빠의 노래들 (0) | 2008.02.19 |
[스크랩] 의심하는 마음이 흙이 되어 가로막고, 임제록 2 (0) | 2008.02.19 |
[스크랩] 선시 사라하의 노래(40頌) (0) | 2008.01.23 |
[스크랩] 옴, 옴마니반메훔-영상과 음악- (0) | 2008.01.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