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佛教智慧修行文化

[스크랩] 밀라레빠 / 밀라레빠의 생애, 서문, 1장, 2장 1 - 책

by 明智 2008. 2. 19.

<!-by_daum->http://moksha.ohpy.com

 

● 서문

 

불타 석가모니의 열반 후 가르침은 히나야나(소승)에서 마하야나(대승)로 그리고 바즈라야나(금강승)로 혹은 탄트라야나로 심화되어 각 시대와 지역에 맞게 변용, 발전해 왔다. 석가모니께서는 인간의 근원적 존재의 원리를 깨닫고 완전한 자유와 해방을 실현한 후 깨달은 자의 길을 밝히셨다. 이제 저 눈 덮힌 히말라랴의 준령으로부터 천년 세월을 뛰어 넘어 여기에 소개되는 티벳 불교의 성자인 밀라레빠는 그 깨달은 자의 길을 닦아 진리를 구체적으로 실현하여 대각을 얻으신 분이었다. 밀라레빠만큼 불타의 가르침을 몸소 행하고 하나하나 확증 체험하여 완전한 해탈을 얻은 사람은 2500여 년의 불교 역사 속에서도 많지 않다고 한다.

 

제츈 밀라레빠는 종파를 초월한 모든 티벳의 불교도 뿐만 아니라 구라파나 미국의 구도자들에게도 불타의 법을 태양과 같이 빛낸 사람으로서, 또 불타의 가르침의 이정표로서 이미 높은 추앙을 받고 있다. 이는 요즈음 세상에 널리 유포되어 있는 불타의 가르침이 그 본래의 뜻에서 멀어져 있는 데 반해 밀라레빠의 설법은 모든 깨달음의 길이 불법의 근원으로 귀의하는 바 종교적 형식과 이념을 넘어 인류에 대해 영원히 그 광명의 문을 열어 놓고 있기 때문이리라.

 

이 책을 읽는 모든 이웃들이 자아의 무거운 짐을 벗고 다함께 해탈을 얻어지이다. 세존 열반 불일출판사 합장

 

● 책 머리에

 

저 머나먼 티벳 남부, 마루빠의 고향에 전설처럼 전해 내려오는 밀라레빠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어린시절을 보냈다. 어머니의 원수를 갚기 위해 일생을 거는 그의 용기, 후에는 침몰해 가는 자신의 운명의 배를 구출하려고 불타의 가르침을 좇아 모진 고행을 수행하는 밀라레빠의 꺽이지 않는 의지가 어린 내 가슴에 뭉클한 감동을 주었던 기억이 새롭다.

 

밀라레빠는 티벳 국민들 그리고 아시아 및 히말라야 고원 지대에 사는 불교도들에게 옛날 이야기 속의 영웅이 아닌 지극히 뛰어난 존재의 화신, 선지식의 아버지로서 지금 당장이라도 그들 앞에 다가설 수 있는 살아 움직이는 스승인 것이다. 그렇다. 티벳 불교 역사상 그토록 많은 사람들을 매혹시켜 왔으며 영적 지도자들과 정신적 엘리트들의 구도 정신을 고양시킨 사람은 일찍이 그 누구도 없었다.
구원의 진실한 메시지나 보다 높은 비밀한 가르침을 찾는 이들에게 이 밀라레빠의 생애 이야기와 깨침의 노래들은 실로 중대한 의미를 선사할 것이다. 이 마음 밝히기의 체험은 예부터 지금까지 끊임없이 지속되어 왔으며 이제 그 영역은 세계각국으로 확장되어 나가고 있다.

 

밀라레빠가 수행한 금강승 불교의 수도 과정은 우리의 심층 구조를 이루고 있는 복잡한 요소들, 즉 생각의 앙금들을 낱낱이 끄집어내어 보다 높은 의식과 인간성의 완전한 자각으로 닦아 나가 궁극의 밝음으로 인도하는 것이다. 이것이 곧 '마음 바꾸기'의 과정이다. 다시 말하자면 우리들 일상에서의 말과 뜻과 행위 속에서 의식적으로 '바름'을 닦아 보석으로 깍아 다듬어내는 작업인 것이다. 첫 단계로는 성별, 인종, 피부 색깔 혹은 종족 등에 기인한 맹목적 열등감 또는 우월감에서 벗어나는 일이다. 전 인류와 우주적 동료에 대한 깊은 연대 의식 없이는 구도자들이 바른 길로 들어설 수 없으리라.

 

자신의 실체를 발견하려면 우리는 각자의 조건지어진 환경이라는 견고한 껍질을 뚫고 나와야 한다. 이러한 마음의 새로운 자각이 곧 모든 진실한 정신 문명의 목표이며 또한 존재의 전체적인 흐름을 형성하고 �을 향한 자세를 이루는 동기를 파악케 하는 것이다. 정신적인 착각은 대단히 파악하기 어려워서 우리는 그것이 착각이라는 사실조차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므로 삶의 목표를 향한 건전하고도 바른 자세를 닦는 이러한 예비 정신 훈련을 하지 않고서는 모든 정신적 노력은 그 본래 취지와는 달리 도저히 자기 도취에 빠져들기가 십상인 것이다.

 

높은 의식 수준을 성취한 단계에서도 그러한 정신 훈련은 모든 인류의 우주적 해방의 이정표를 목표로 더더욱 발전되어 나가야만 한다. 그러므로 마음 바꾸기의 과정은 모든 종류의 착각을 제거하며 동시에 덕을 쌓아 나가는 점진적인 정화의 형태를 취하게 되는 것이다. 밀라레빠의 구도 과정은 혼자의 힘으로 말로는 전달될 수 없는 진리의 비밀을 캐기 위해 정신을 집중하는 불교적 방법의 귀중한 실례를 보여 주고 있다.

 

아무리 위대한 사람이라도 커다란 시련에 부딪혀 보기 전까지는 건전한 자기 소화가 된 성취를 얻었다고 할 수가 없다. 갖가지 시련 가운데서의 지속적인 정진은 우리로 하여금 마음이 넓어지고 솔직해지고 결단력을 갖게 하는데 도움을 주는 것이다. 그리고 이와 같은 목표를 수행하는 데 있어서 우리는 우리 자신의 부족한 점을 알기 위해서 항상 깨어 있어야 한다. 그래야만 삶이 만나는 모든 어려움을 한 곳에 모아 집중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불성의 발견은 명상 수행의 처음이며 마지막이다. 그러나 그 사이에는 수많은 단계가 있다. 따라서 자아 개조의 길로 바르게 인도되려면 우리의 자각이라든가 생각 혹은 감정, 그리고 인간의 신체가 갖는 실로 놀라운 만큼 복잡한 생리 구조와 잠재력을 알고 이를 인정해야 한다. 우리 현대인들은 이 점에 있어 특히 많은 어려움을 갖게 되는데 그것은 우리가 옛 전통에서 내면을 표현하는 신비적인 언어들을 다 포기해 버렸기 때문이다. 사실 소위 과학적이라 부르는 날마다의 우리 현대인들에게 '중음신', '비어 있음' 혹은 '깨어 있음'이라는 등의 형이상학적인 표현은 쉽사리 이해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 책의 독자들은 '명상'이라는 단어를 종래의 통념으로 알고 있듯 어떤 종류의 신체적 형태나 자세와 연관시켜서는 아니 될 것이다. 차라리 명상을 깨어 있기 위한 투쟁으로 생각하는 것이 더 그 핵심에 가까울 것이다. 굳은 서원과 의지로 번뇌와 고통의 그물과 같은 인과[카르마]를 벗어나 인류가 동경하는 가장 높은 이상을 성취해 나가는 과정을 엮은 이 전기는 많은 사람들을 위해 커다란 자비의 은총이 되리라고 생각한다. 이 책을 읽는 모든 분들에게 불타의 가호가 있기를 바란다. 롭상라룽파

 

 

 

 

 

제 1 장. 사바에서의 삶

 

어린 시절

 

그 옛날, 지금은 가장 성스러운 순례지가 된 니야낭의 한 동굴에는 한때 아뉴다라 바즈라야나(無上金剛大乘)파의 보배인 제츈 밀라(밀라레빠) 제빠도르제라는 대단히 위대하신 수행자가 있었다. 또한 그곳에서는 깊이 명상을 수행하여 마음의 평정을 이룬 렛충 도르제 다꾸바를 위시한 여러 훌륭한 제자들과 수 많은 선남선녀가 모여 제츈(밀라레빠) 존자로부터 부처님의 대승법을 듣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밤, 암자에서 명상 중이던 제자 렛충은 꿈을 꾸었다. 렛충은 유겐이라는 천상의 한 나라를 거닐고 있었다. 집이며 궁전은 귀한 보석으로 장식되었고 사람들은 예쁜 옷을 입고 몸에는 아름다운 장신구로 치장하고 있었다. 더없이 상쾌하고 아름다운 곳이었다. 사람들이 말은 하지 않았으나 서로 즐거운 미소와 눈인사를 주고받고 있었다. 뜻밖에 렛충은 네팔에 있을 때 그의 스승이었던 라마 데뿌와의 제자, 바리마라는 여인을 만나게 되었다. 빨간 법의를 입은 그녀는 그들의 지도자인 듯 싶었다.

 

렛충을 보자 그녀는 반색을 하였다. "조카여, 그대가 오다니 참으로 반갑구려!" 그녀는 심신을 황홀케 하는 호화로운 저택으로 그를 안내하더니 매우 훌륭한 향연을 베풀어 주었다. 그녀가 말했다. "조카여, 지금 유겐에서는 미큐파(Mikyupa, 아촉불) 부처님께서 법을 설하신다오. 만일 법문을 듣고 싶다면 내 부처님의 허락을 얻어 드리리다." 렛충은 너무나 원하던 바이어서 "고맙습니다. 참 친절하시기도 합니다" 하며 뛸 듯이 기뻐하셨다. 둘은 함께 시내로 들어갔다.

 

도시의 한가운데에 금은 보화로 장엄 된 높다란 옥좌가 있고 그 위에서 그가 명상 중 친견했던 것보다 훨씬 빛나고 위엄이 서린 미큐파 부처님께서 좌정하고 계셨다. 그분은 드넓은 바다와 같이 운집한 제자들을 상대로 법을 설하고 계셨다. 바리마의 인도로 부처님 앞에 나아간 렛충은 부처님 발아래 엎드려 예배하고 축수와 설법을 들을 수 있도록 간청하였다. 그러한 그에게 부처님은 부드러운 미소를 띄우시며 한없는 자비의 눈길을 보내 주셨다.

 

그분이 설하신 것은 과거의 모든 부처님들과 불보살님들의 탄생과 생애에 관한 내력이었다. 그리고 그러한 법문은 그에게 깊은 신앙심을 불러일으켰다. 또한 부처님께서는 모인 대중 한 사람 한 사람이 다 각각 깊은 신앙심이 우러나지 않을 수 없는 그러한 말솜씨로써 그가 여태껏 들어 아는 것보다 훨씬 자세하게 대성자이신 티로빠, 나로빠 그리고 마루빠님의 생애에 관해 말씀해 주셨다.

 

법회가 끝날 무렵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내일은 내 이제껏 이야기한 것보다 훨씬 경탄할 만한 밀라레빠의 생애 이야기를 말하려 하니 그대들은 빠짐없이 참석토록 하라." 거기에 있던 한 제자가 말했다. "우리가 들었던 이야기만 해도 굉장한 것인데 그보다 훨씬 경탄할 만한 것이라니 도대체 어떤 이야기일까요?" 그러자 다른 제자가 말했다. "지금까지 들은 바로는 그분들이 수많은 생을 통해 덕을 쌓고 욕망과 망상을 제거하여 구원의 열매를 맺으셨다는데 이 밀라레빠라는 분은 단 한생을 통해 그 누구에게 못지 않은 공덕을 쌓고 완성에 이르셨다지요."

 

처음에 말을 꺼낸 이가 다시 말했다. "오, 모든 중생들의 이익을 위해 그와 같이 훌륭하신 분의 생애 이야기를 듣도록 청하지 않는다면 우리가 참된 불제자라 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들은 물었다. "그분은 지금 어디에 계신가요?" 누군가가 대답하였다. "그분은 오민이나 곤가(제석천) 중 어느 한 곳에서 계실 것입니다."

 

렛충은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스승께서는 분명 지금 티벳에 계시는데 이는 대체 무슨 말들인가? 그렇다면 이런 말들은 모두 나의 어리석음을 일깨워 나로 하여금 모든 중생의 이익을 위해 스승께 직접 생의 이야기를 해 주시도록 간청하라는 암시인 것일까?" 렛충이 이런 생각을 하는데 바리마가 기쁜 듯이 그의 손을 잡고 흔들며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조카여, 그대가 이제야 겨우 알아차렸군요."

 

렛충이 눈을 떠보니 날은 이미 밝아 있었다. 잠에서 깬 렛충은 몸과 마음이 매우 상쾌하였다. 간단한 아침 공양을 마친 후 그는 스승께 나아갔다. 스승은 이미 많은 제자들과 신자들에게 둘러싸여 좌정하고 계셨다. 렛충은 스승께 예배드리고 안부를 여쭙고 오른쪽 무릎을 굽혀 합장하고 말씀드렸다.

 

"자비로운 스승이시여, 감히 청하옵니다. 이 대중에게 은혜를 베푸시고 또한 미래의 제자와 신자들의 공부에 본보기가 될 수 있도록 스승의 생애를 통해 겪으신 일들을 소상히 말씀해 주시옵소서. 과거의 모든 부처님들 역시 중생들을 위해 열두 가지 위업(偉業)의 내력과 그 밖의 기록을 남기심으로써 부처님의 진리는 더욱 널리 전파되고 번영하였습니다. 대성 티로빠, 나로빠, 마루빠 그 밖의 많은 위대하신 성자들 역시 자서전을 남기시어 후세 사람들이 수행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되고 있사옵니다. 오, 스승이시여, 당신의 일생에 관한 이야기 또한 많은 사람들의 수행에 도움이 될 것이오니 부디 말씀해 주시옵소서."

 

렛충의 이 같은 간청에 스승은 미소를 띄우시며 답하셨다. "착하고 착하다. 렛충, 그대는 이미 나의 생애나 내력에 관해 잘 알고 있으면서도 다른 이들을 위해 이 같은 원을 말하는구나 젊은 시절 나는 몇 가지의 악업을 지었고 후년에는 몇 개인가의 선업을 쌓았으나 이제 나는 선악으로부터 모두 떠나 있다. 근행에 주력하여 그것을 마친 나에게는 이미 굳이 마음 내어 행해야 할 것은 아무 것도 남아 있지 않느니라."

 

렛충은 다시 일어나 스승께 예배하고 말씀드렸다. "스승이시여, 존사께서 최초로 최상의 진리를 얻으신 방법과 그 이전의 많은 고행, 또 불멸의 진리를 체득하여 모든 지혜의 최고 경지에 도달하실 때까지 존사께서 얼마나 끊임없이 명상하시었는지, 그리고 어떻게 하여 그물과 같은 죄업을 벗어나 다시는 새로운 업을 짓지 않을 수 있으셨는지에 대한 이야기는 큰 뜻과 희망을 지닌 사람들에게 더없이 흥미롭고 유익한 것이 될 것이옵니다. 그 전말을 상세하게 말씀해 주시옵소서. 친구들이여, 신앙의 형제들이여, 부디 나의 이러한 기원에 동참하여 말씀해 주시도록 함께 간청합시다."

 

그러자 대중들은 모두 일어나 절하며 말씀드렸다. "부디 저희들을 위해 스승의 생애에 대해 설하여 주시옵소서."

 

"자, 그대들 모두가 원한다면 구태여 내 생애를 숨길 필요가 없으니 내 이제 모두 말해서 그대들을 기쁘게 하겠노라."

 

나는 균뽀(취鷲 : 독수리) 성을 가진 종족 출신으로 이름은 밀라레빠, 나의 집안은 와루와루라 불리는 북방에서 가축과 양을 기르던 유목민의 집단이었다. 나의 선조 중 한 분이 노름에 빠져 가산을 탕진하고는 고향을 떠나 네팔 국경 부근 갼가 쨔라는 곳에 정착하셨다. 그 후 나의 할아버지와 아버지는 여러 곳을 돌아다니며 상업을 하여 큰 재산을 모으게 되었다. 아버지 세라뿌 갸르짼이 결혼한 것은 그가 막 스무 살이 되던 해였다.

 

상대는 그 지방 귀족 출신으로 갸르모 겐이라는 처녀였다. 그녀는 애증(愛憎)의 정이 깊고 현명하고 활발하여 갸르모 겐(하얀 보석)이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다. 우리는 그 지방의 가장 좋은 저택에서 부유한 생활을 누리고 있었다. 이 무렵 어머니 갸르모 겐은 임신을 하셨다. 그것은 아버지 밀라 세라뿌 갸르짼이 남쪽의 여러 상품을 모아 북방으로 상당한 시일이 걸리는 장사길을 떠나 있던 때의 일이었다. 내가 태어난 것은 임진년(1052년) 가을이었다. 어머니는 나를 출산하자 곧 아버지에게 사람을 보냈다.

 

"추수절이 다가옵니다. 저는 사내아이를 분만하였습니다. 아기 이름을 짓고 명명식을 갖고자 하오니 속히 돌아오십시오." 기별을 받고 아버지는 대단히 기뻐하셨다. "사내아이가 태어났다니 대단히 경사스러운 일이야. 아이의 이름을 '데빠가-들어서 기쁘다-'로 지어야겠다. 이제 장사일도 다 마쳤으니 이제 집으로 돌아가야겠어."

 

나의 이름은 데빠가로 결정되었으며 명명식 날에는 성대한 잔치가 벌어졌다. 그 후 내가 네 살이 되자 여동생이 태어났는데, 이름은 빠다 곤기라고 지었다. 우리는 부모님의 지극한 사랑과 많은 하인들의 세심한 보살핌 속에서 자라고 있었다. 마을 사람들은 수군거렸다. "저 집안처럼 근면으로 많은 재산을 모은 타관 사람은 처음 봤어요. 저 굉장한 집을 보세요. 그 안에 있는 호화로운 가구들은 말할 것도 없고요. 참 대단한 부자예요."

 

우리가 이 같이 사람들의 부러움 속에 살고 있을 때, 나의 아버지 밀라 세라뿌 갸르짼이 위중한 병이 결리게 되었다. 의사들은 아버지의 죽음이 가까웠음을 친척들에게 알렸다. 본인마저도 이미 삶의 희망을 포기하고 죽음을 맞이할 각오를 하고 있었다. 아버지는 나의 큰아버지 큰어머니를 위시한 친척들을 전부 모이게 한 후, 어머니와 어린 자식들의 후견으로 큰아버지 큰어머니를 지정하고 그들에게 전 재산의 관리를 위탁한다는 유언을 하셨다. 아버지는 모두 앞에서 유언장을 읽어 주고 서명을 하고 봉인한 후 말씀하셨다.

 

"나는 이제 얼마 더 살지 못할 것입니다. 아들이 아직 나이 어리니 친지 여러분, 특히 아들의 큰아버지 큰어머니에게 후견을 부탁하고자 합니다. 언덕 위 목장에 있는 모든 가축과 오르마 삼각주에 있는 비옥한 토지 및 그 밖의 여러 곳에 흩어져 있는 많은 토지와 기타 재산 중 일부는 나의 장례 비용에 사용하시고 나머지는 아들이 성인이 될 때까지 잘 보살펴 주십시오. 아들이 성장하면 어렸을 때 정하여 놓은 혼처, 제세와 혼인 시켜 주십시오. 그리하여 새 사람이 들어오면 모든 재산을 그들에게 돌려주십시오. 그때까지 친지여러분, 그 중에서도 큰아버지 큰어머니에게 모든 것을 맡깁니다. 사후라도 나를 고통스럽게 하는 일이 없게 되기를 바랍니다. 하늘에서도 당신들을 주시하고 있을 것입니다!"

 

얼마 안 가서 아버지는 돌아가셨다. 그때 내 나이 일곱 살이었다.

 

 

 

  고통의 나날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친척들은 어머니 가르모 겐에게 살림을 맡기고, 그들은 필요할 때만 도움을 주는 것이 좋겠다고 했으나 큰아버지와 큰어머니는 이를 반대하고 모든 살림권과 재산 관리를 장악해 버렸다. 그리하여 우리는 여름에는 큰아버지의 소작인으로 겨울에는 큰어머니를 위해 양털로 실을 잣고 옷감을 짜는 하인으로 전락해 버렸다. 그 대가로 우리는 가축 먹이로나 알맞은 음식을 받아먹는 처지가 되었으며 몸에는 넝마 조각을 둘러야만 하였다.

 

심한 노동으로 손발은 부르트고 갈라졌으며 물집이 잡혔다. 급기야 영양실조에 걸린 우리는 비참할 정도로 야위고 쇠약해졌고, 금과 유리 장식으로 꾸미던 윤기 흐르는 머리는 거칠어지고 이 투성이가 되었다. 마을 사람들은 우리의 모습을 보고 동정의 눈물을 흘리며 큰아버지 큰어머니의 사악한 처사에 분개했으나 그들은 이런 비난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여동생과 나는 어머니가 큰어머니에 대해 "저 여자는 균 쯔바 빠르딘(귀족 자손의 고상한 사람)이라는 이름이 맞지 않고 두모 다꾸딘(막 굴러먹는 사악한 귀신)이라야 한다"라고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고 있다. 그 이후 우리는 큰어머니를 "잔인한 귀신"이라고 불렀다. 그 정도로 우리는 비참한 상태에 놓여 있었다. 시간이 흐르자 마을 사람들조차 이제는 오히려 우리를 깔보고 업신여기기까지 하였다.

 

"부자 남편에 양순한 아내? 부드러운 양모에 좋은 모포? 그건 다 옛날 이야기예요. 부자 남편이 죽으니 현모양처라는 것도 다 소용없잖아요?" 그들은 이렇게 수근 거리는 것이었다. 그러나 약혼녀 제세의 부모님은 우리의 처지를 동정하고 철 따라 나에게 옷과 신발을 대어 주셨다. 그리고 내게 이렇게 격려해 주셨다. "재산이란 영원히 있는 것이 아니야, 그것은 풀잎의 이슬과도 같다네. 재산을 잃은 것에 너무 상심 말게. 그 재산도 원래부터 있던 것이 아니고 자네의 할아버지와 아버지께서 노력과 근면으로 얻은 것이 아닌가? 때가 되면 자네도 그렇게 노력해서 그만한 재산을 모을 수 있을 걸세."

 

내가 열다섯 살이 되던 해, 어머니는 외가로부터 결혼지참금조로 작은 밭을 하나 얻게 되셨다. 외삼촌은 이 땅을 잘 경작하여 그 소득을 저축해 주셨다. 어느 날 외삼촌은 그 돈으로 많은 고기를 사고 술을 빚으셨다. 바야흐로 어머니 갸르모 겐과 우리들이 아버지가 물려주신 유산을 돌려 받기 위해 큰 연회를 베풀 것이라는 소문이 온 마을에 퍼졌다. 많은 친척들, 그 중에도 아버지의 임종시 함께 그의 유언을 들었던 사람들과 큰아버지 큰어머니가 연회에 초대되었다.

 

연회는 시작되었다. 어머니가 일어나 인사 말씀을 하셨다. "이 자리에 모이신 여러분들에게 제가 이 연회를 열게된 이유를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이 자리의 여러 어르신네와 아이들의 큰아버님 큰어머님은, 저희 남편이며 아이들의 아버지 밀라 세라뿌 갸르짼의 마지막 말씀을 잘 기억하실 줄 압니다. 이제부터 읽어 올릴 유언장의 내용을 다시 한번 잘 들어 주시기 바랍니다."

 

외삼촌은 사람들을 향해 유언장을 크게 읽으셨다. 그것이 끝나자 어머니는 다시 말씀하셨다. "우리 모자는 지금까지 큰아버님과 큰어머님께서 우리를 보살펴 주신 데 대해 깊은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그러나 이제 데빠가는 살림을 충분히 꾸려나갈 수 있는 나이가 되었으니 재산에 대한 권리를 돌려주시고 제세와 결혼할 수 있도록 여러분께서 도와 주시기 바랍니다."

 

큰아버지가 돌연 고함을 치며 큰 소리로 말씀하셨다. "도대체 당신이 말하는 재산이란 무얼 두고 하는 말이오? 밀라 세라뿌 갸르짼이 생전에 내게 빌렸던 재산들을 죽으면서 우리에게 반환했던 것인데 그것을 말하는 것이오? 참 어처구니없는 노릇이야. 물에 빠진 자
를 구해 주었더니 보따리 내 놓으라는 격이구먼."

 

큰아버지는 난폭하게 상을 걷어차고 옷자락을 펼치며 큰어머니를 비롯한 그의 일행과 함께 나가 버리셨다. "오 밀라 세라뿌 갸르짼이여! 당신은 우리가 당하는 억울함을 보시나요. 당신은 말하지 않았습니까? 사후의 세계에서라도 우리들을 보고 있겠다고 그것이 정말이라면 지금이 바로 그때입니다."

 

어머니는 통곡하며 쓰러지셨다. 나와 여동생은 함께 흐느껴 울 뿐 어찌할 바를 몰랐다. 외삼촌과 제세의 부모님, 그리고 우리의 처지를 동정한 몇몇 마을 사람들이 남아서 어머니를 위로하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울지 마세요. 운들 무슨 소용이 있겠어요. 차라리 이 자리에 참석하였던 사람들에게 부조금을 걷는게 어떻겠어요. 그걸 알게 되면 저 큰아버지 큰어머니도 사람이라면 조금은 내놓을 게 아닙니까."

 

외삼촌도 같은 제안을 하셨다. "말씀하신 대로 따르렴. 그리고 데빠가는 기술을 배우러 보내고 너와 딸아이는 내 집에서 함께 살며 밭일을 돌보도록 하자. 그렇게 해서 큰아버지 큰어머니로 하여금 부끄러움을 스스로 알도록 하는 게 어떻겠느냐?" 어머니는 이런 제안을 울면서 거절하셨다.

 

"저는 저의 재산을 다 빼앗겼으면서도 이제껏 단 한번 자식들을 기르기 위해 구걸을 해 본 적이 없습니다. 큰아버지 큰어머니로부터는 우리 땅을 한자도 되돌려 받지 않을 작정입니다. 그들의 학대를 받을지라도 새벽부터 밤중까지 뛰며 일하여 그들을 수치스럽게 히겠습니다. 저는 제 보잘것없는 밭만을 일구며 살겠습니다."

 

쨔의 미도께라는 마을에는 루 가든 간[入龍]이라는 그 지방에서 상당한 명성을 얻고 있는 닝마파의 스승이 계셨다. 어머니는 읽고 쓰기를 가르치기 위해 나를 그리로 보내셨다. 친척들은 우리에게 약간의 원조를 해 주셨고, 특히 제세의 부모님은 내게 일용품을 보내주곤 하셨으며, 때로는 나를 위로하기 위해 제세를 보내기도 하셨다. 외삼촌 또한 어머니와 누이가 구걸을 하지 않아도 되게끔 일거리를 갖다 주었고 누이는 누이대로 품팔이를 하여 자기 앞가림을 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집안 형편은 말이 아니었다. 이러한 가난은 나로 하여금 우울함과 참담한 마음에서 벗어날 수 없게 했다. 따라서 당시 나에게 기쁨이란 전혀 없었다. 어느 날 나는 스승을 모시고 아랫마을에서 베풀어진 결혼 피로연에 참석하게 되었다. 스승은 그 만찬의 주빈으로 윗자리에 앉으셔서 많은 사람들로부터 술을 권유받고 계셨다. 나도 오랜만에 이러한 스스럼없는 분위기에 모든 시름을 잊고 권하는 대로 술을 받아 마셨다가 완전히 취해 버리고 말았다.

 

그날 밤 나는 스승에게 올려진 헌물을 갖고 먼저 귀가하게 되었다. 나는 퍽 취해서 사람들이 만찬장에서 노래를 부르던 것을 마음에 떠올리며 스스로 상당히 자만하고 있던 나의 아름다운 목소리로 남에게 들려주고 싶은 욕망에 사로잡혔다. 길을 걸으며 나는 계속 노래를 불렀는데, 스승의 집으로 가는 길은 우리 집 앞을 지나야만 했었다. 바로 그때 부엌에서 보리를 볶고 계시던 어머니가 그러한 아름다운 음성의 소유자는 당신 아들 이외에는 없다는 것을 알고 자신의 귀를 의심하셨다. 어머니는 아연실색해서 보리를 내던지고 오른손에는 막대기를 왼손에는 재를 움켜쥐고 달려 나오셨다.

 

어머니는 내 얼굴에 재를 뿌리고 막대기로 후려갈기셨다. "오, 밀라 세라뿌 갸르짼이여, 이 소갈머리 없는 당신의 아들 녀석을 보십시오!" 라고 외치더니 어머니는 기절하셨다. 그때 누이가 달려 나왔다. 우리는 함께, 어머니는 슬픈 표정으로 나를 응시하며 말씀하셨다. "얘야, 너는 즐겁게 노래나 하고 있을 기분이더냐? 이 세상의 어떤 불행한 사람이라도 우리보다 더하지 않다.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비애와 한탄에 젖어 우는 것뿐이다." 우리는 함께 목놓아 울었다.

 

내가 말했다. "어머니 참으로 그렇습니다. 그러나 너무 슬퍼하지 마세요. 맹세코 저는 어머니의 원한을 풀어드리겠습니다."

 

"내가 바라는 것은 네가 흑마술을 익혀 우리의 원수에게 복수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네가 흑마술의 달인이 되어 우리에게 이러한 참혹한 슬픔과 고통을 안겨준 저 사악한 큰아버지와 큰어머니를 없애고 구대(九代)에 이르기까지 그 자손의 씨를 말리는 것이 나의 뼈저린 소망이다. 네가 그 일을 할 수 있겠느냐?"

 

나는 어머니에게 흑마술 스승께 바칠 수업료와 노잣돈을 마련해 주신다면 기필코 소원을 성취시켜 드리겠노라고 맹세하였다. 그리하여 어머니는 유일한 재산인 조그만 밭뙈기의 절반을 팔아 얼마간의 노잣돈을 준비하고 흑마술의 스승께 선물할 공물 및 그 밖에 여행에 필요한 물품을 구입하셨다.

 

나는 나대로 읍에 나가 여관에 며칠 동안을 머물며 동행자를 찾아보았다. 이윽고 위(중앙주)와 짱 주로 종교의 이것저것과 흑마술을 배우러 간다는 인상 좋은 청년 다섯 명을 만날 수 있었다. 가리 돌 지방에서 왔다는 이들은 나와 함께 동행할 것을 허락하였고, 나는 그들을 집으로 데려와 며칠간을 묵게 했다. 극진한 대접을 하며 어머니는 몰래 그들에게 나에 대한 당부를 하셨다.

 

"젊은 양반들, 내 아들아이는 의지력이 약하다오. 그러니 댁들이 친구로서 좀 야단도 치고 격려도 해 주어서 그애로 하여금 마술의 달인이 되도록 도와 주시겠소. 그리만 된다면 내 꼭 그 은혜를 갚으리다." 이별의 날이 다가왔다. 어머니는 우리에게 이별주를 권하며 단 하나뿐인 아들과의 헤어짐에 가슴이 찢기는 듯 잠시도 내 곁을 떠나지 않고 흐느끼시고 또 흐느끼셨다. 눈물로 범벅이 된 얼굴로 나를 응시하던 어머니는 비통한 어조로 그러나 단호히 말씀하셨다.

 

"사랑하는 아들아, 네가 그 먼 곳까지 마술을 익히려 가는 목적을 잠시도 잊지 말도록 해라. 너는 저 젊은이들과는 처지가 같지 않다는 것도 명심하여라. 저 사람들이야 부잣집 도령들로 마술을 그저 재미나 유희로 배우러 가지만 우리의 경우는 죽느냐 사느냐 하는 문제이다. 네가 만일 우리 적에게 철저히 복수할 만큼 충분한 마술을 익히지 못하고 돌아와 버린다면 내 정녕 네가 보는 앞에서 내 목숨을 끊으리라."

 

그것은 참으로 기약 없는 작별이었다. 나는 이제 다시는 어머니를 만나 뵈올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비통하고도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나는 눈물로 어머니께 작별을 고하고 흑마술의 스승을 찾아 고향을 떠났다.

 

 

 

 복 수

 

읍내에서 몇 사람의 라마를 만나 그들에게 흑마술의 가장 뛰어난 술사가 누구인가를 수소문했다. 그 중 한 사람이 대답하기를 야루룽 교루뽀 마을의 라마 융통 트로겔이라는 분이라고 일러 주었다. 우리는 라마 융통 트로겔 문하로 들어가기로 결정하였다. 야루룽 교루뽀에 도착한 우리는 스승을 찾아뵈었다. 나의 일행들은 스승께 갖고 있던 돈의 일부를 바쳤다. 그러나 나는 지니고 있던 모든 돈과 소지품, 그 위에 나의 몸과 마음을 전부를 스승께 바치며 나의 세습 재산을 박탈한 자들을 멸망시킬 수 있는 흑마술의 비법을 가르쳐 주기를 간청하였다. 또 한가지 그 비법에 숙달될 때까지 먹고 자는 것을 제공해 달라는 말씀도 드렸다.

 

스승은 웃으며 말씀하셨다. "그대의 간청을 받아들이기로 하지." 그리하여 우리의 수업은 시작되었다. 그러나 그것은 실지로 신통력을 낼 수 있는 정도는 아니었다. 우리가 배운 것은 흑마술의 한 종류로 우레와 같은 소리를 내어 널리 울려 퍼지게 하는 도슬이었다. 이것은 하늘과 땅을 결합시키는 힘과 죽음에 이르게 하는 방법 그 밖에 두서너 가지의 유익한 것을 가능케하는 것이라 하였다. 근 일년 가까이 이러한 수업을 받고 나자, 함께 왔던 젊은이들은 고향으로 돌아가기를 스승께 청하였다. 스승은 이를 허락하고 정표로서 우리들 모두에게 그 지방에서 생산되는 질 좋은 털옷을 선사하였다.

 

그러나 나는 내 자신이 아직 만족할 만한 경지에 이르지 못했다고 생각하였다. 여태껏 배운 실력으로는 고향에 돌아가 실질적인 효과를 낼 수 있는 힘을 발휘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되면 어머니는 틀림없이 내가 보는 앞에서 자결해 버리시리라. 정녕 이대로 집으로 돌아갈 수는 없었다.

 

나의 마지못한 태도를 지켜본 친구들이 내게 그 이유를 물었다. 나는 아직 한가지도 배운 것이 없기 때문이라고 대답하자 그들은 내게 이렇게 충고하였다.  "우리는 이곳에서 배울 수 있는 모든 행법(行法)을 배웠잖은가? 스승께서도 더 이상 우리에게 가르칠 것은 없다고 하셨지 않나? 잘 생각해서 결정하게."

 

그들은 스승께 나아가 엎드려 절하고 각자 고향으로 향했다. 나는 스승께서 주신 털옷을 걸치고 그들과 반나절 남짓 동행하여 전송하였다. 작별하고 돌아오는 데 길 위에는 많은 쇠똥이 굴러다니고 있어서 나는 그것들을 앞치마에 주워 담았다. 스승은 좋은 텃밭을 갖고 계셨다. 나는 그 밭에다 구덩이를 파고 주워 온 쇠똥을 묻어 드렸다.

 

옥상에서 나의 이러한 행동을 보시던 스승께서는 주위에 있던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한다. "내가 가르치던 제자 중 저 사람처럼 착하고 근면한 자는 없었고, 또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오늘 아침 내게 이별을 고하러 오지 않았던 것은 다시 내 밑으로 돌아올 작정인 것이야." 스승은 말씀하셨다. "데빠가, 그대가 고향으로 돌아가지 않은 것은 어찌된 연유에서인가?" 나는 스승께서 선사하신 털옷을 벗어 잘 접어 그의 앞에 바쳤다. 내가 가진 재산이라곤 그것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공손히 인사드리고 스승의 발에 이마를 대고 말씀드렸다.

 

"존경하는 스승이시여, 제게는 과부가 된 어머니와 한 여동생이 있습니다. 우리는 큰아버지 큰어머니에게 우리의 유산을 빼앗겼습니다. 또한 참기 어려운 가혹한 학대를 받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희들은 우리의 재산을 찾고 그들에게 복수할 수 있는 아무런 힘도 없습니다. 그래서 어머니는 저로 하여금 흑마술을 배우러 보냈습니다. 그러니 제가 만일 그들에게 복수할 수 있는 충분한 기술을 익히지 못한 채 돌아간다면 제 어머니는 필경 자결해 버릴 것입니다. 스승이시여, 부디 제게 무서운 힘을 발휘할 수 있는 비법을 가르쳐 주십시오."

 

스승은 나에게 우리가 어떻게 해서 유산을 탈취 당하셨는지, 또한 그들에게 어떠한 학대를 받았는지 그 전말을 상세히 말하도록 이르셨다. 나는 스승께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일어난 일과 그후 큰아버지와 큰어머니가 우리에게 저지른 가혹한 행위를 낱낱이 말씀드렸다. 이야기 중간중간 설움에 복받쳐 나의 눈에선 눈물이 끊임없이 흘러내려 이야기가 중단되곤 하였다. 스승께서도 슬픔을 참을 수 없는 듯 눈물이 그의 두 빰을 타고 흘러 내렸다.

 

"그대 말이 사실이라면 그대는 참으로 견디기 어려운 억울한 일을 당하였구나. 좋다. 나의 주술의 힘으로 복수를 할 수 있도록 해 주지. 허나 정당한 사유 없이 절대로 그것을 함부로 사용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명심하라. 내가 처음에 그대들에게 이 주술을 가르치지 아니한 것은 이를 어리석게 사용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 그대에게 아무 거짓이 없음을 알았으므로 내가 갖고 있는 주술의 전부를 가르쳐 주겠노라. 나는 사람을 마비시켜 살해하는데 가장 효과가 있는 잔돈 마루나꾸(紫怪蛇)라는 마술을 알고 있다.

 

쌍롱 계곡에 윤덴 카츠오라는 의사이며 마술사인 라마가 있는데, 나는 이 마술의 비법을 그에게 가르쳐 주었다. 대신 그는 손가락 하나로 큰 우박을 내리게 하는 마술을 내게 전해 주었다. 그 이래 우리는 서로 약속하기를 그에게 우박의 비법을 배우러 오는 사람은 내게 보내 배우게 하고 사람을 살해하는 마술을 배우러 내게 오는 사람은 그에게 보내기로 하였다. 자, 이제 그대는 나의 큰아들과 함께 그의 처서로 가서 그 술법을 전수 받도록 하라."

 

우리는 윤텐 카츠오가 있는 쌍룽 계곡으로 가서 그에게 스승께서 보내신 선물과 편지를 올리고 사정을 말씀드렸다. "나의 친구는 변함없는 우정을 갖고 맹세를 잘 지키는구나. 틀림없이 나는 그대에게 그 비술을 가르쳐 주리라. 우선 그대는 인적이 없는 이 산 꼭대기에 암자를 하나 짓도록 하라." 나는 그가 지정해 준 장소에 큰 돌을 쌓아 올려 출구가 없는 튼튼한 암자를 하나 세웠다.

 

라마는 내게 그 비술을 수련하는 데 필요한 주문을 가르쳐 주며 보통 칠일간의 수련으로 충분하다고 일러 주셨다. 그러나 나의 신통력을 발휘하고 싶은 곳은 이 나라와는 아득히 먼 곳이어서 나는 칠일을 더 수련하기를 부탁드렸고, 라마는 이를 허락하셨다. 열 사흘째 되는 날 밤, 라마가 나의 암자로 찾아오셨다.

 

"오늘 밤 그대는 만다라[제단] 옆에서 그대가 성공한 증거와 소원성취를 보게 되리라." 바로 그날 밤, 서른 다섯 개의 피가 뚝뚝 떨어지는 머리와 심장을 갖고 수호신들이 모습을 나타내더니 이들 전리품을 쌓아 올리며 말하였다. "요 며칠간 거듭해서 자네가 우리를 불렀는데 그래, 자네가 바라는 것은 이것들이겠지?" 그리고는 사라졌다.

 

다음 날 아침 나를 찾아 온 라마는 희생되어 마땅한 그 사람을 살해할 것인지를 물으셨다. 나는 기쁨에 차서 라마께 그들로 하여금 바로 내가 그와 같은 복수를 하였다는 것을 알게 하고, 또 장래 내 신통력의 산 증인으로 그들을 살려 두고 싶다고 말씀드렸다. 이렇게 되어 나의 최대의 적, 큰아버지와 큰어머니는 가계의 멸망에서 제외되었다. 나는 수호신들께 감사의 기도를 드리고 암자를 나왔는데, 그 당시의 흔적이 아직도 그곳에 남아 있다고 한다.

 

그런데 흑마술로 이룬 나의 복수의 현장에는 다음과 같은 일이 일어났다. 그 날은 마침 큰아버지의 장남 결혼식이어서 많은 사람들이 초대되었다. 저택 안에는 큰아버지의 아들들과 신부 그리고 큰아버지의 편에 가세하여 우리를 멸시하였던 서른다섯 명의 일가 친척과 손님들이 있었다. 초대된 손님 중 우리를 동정하였던 사람들은 아직 연회로 향하는 도중으로 그들은 가벼운 귀엣말을 주고받으며 잔칫집으로 향하고 있었다.

 

"저 집사람들이야말로 '재산을 타인에게 맡기니 문 밖으로 쫓겨난다'는 옛말 그대로예요. 설마 흑마술을 배우러 떠난 데빠가의 복수가 아직은 효과가 없을지라도 이런 때야말로 인과의 응보가 찾아 올 다시없는 기회가 아니겠어요?"

 

그때 한 하녀가 물을 길으러 나와, 많은 조랑말들이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는 울타리가 처진 넓은 정원을 가로질러 가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그 말들이 한 필도 보이지 않고 대신 수많은 전갈과 거미, 뱀과 개구리들이 우글거리는 것처럼 보였다. 그 중 괴물처럼 생긴 큰 전갈 한 마리는 거대한 집게발을 저택의 큰 기둥에 들이박고, 있는 힘을 다해 밖으로 끌어당기는 것 같았다. 그 무시무시한 광경에 경악해서 떨고 있던 하녀는, 짐승들이 흥분된 나머지 미쳐 날뛰기 시작했을 무렵에야 겨우 도망쳐 나올 수 있었다.

 

짐승들은 우리의 망을 찢고 뛰쳐나와 울부짖고 걷어차는 등 주변 일대는 극도의 혼란에 빠졌다. 그러자 그 중 한 마리가 굉장한 힘으로 저택의 기둥을 들이받자 기둥이 부러지면서 저택 전체는 굉음과 함께 무너져 내렸다. 동시에 집안에 있던 신부 및 큰아버지의 아들들을 비롯한 서른다섯 명 모두가 다 그 밑에 깔려 죽고 말았다. 흙먼지는 하늘을 덮고 사람들과 짐승들의 시체가 폐허를 메웠다.

 

굉음과 함께 짐승의 울부짖는 소리, 사람들의 날카로운 비명소리에 나의 누이가 무슨 일인가 하고 집 밖으로 달려 나왔다. 누이는 곧 안으로 뛰어 들어가며 숨 넘어가는 소리로 어머니를 불렀다. "어머니 나와 보세요. 큰아버지의 저 집이 무너져서 많은 사람이 죽었어요!"

 

어머니는 벌떡 일어나 나와 그것이 사실인지를 뚫어지게 쳐다보고 계셨다. 흙먼지에 뒤덮이고 허공에 가득 한 비참한 울음소리와 신음소리를 듣고 어머니는 완전히 놀라는 한편 잔인한 희열감에 젖으셨다. 어머니는 긴 막대기 끝에 넝마조각을 매달아 깃발처럼 높다랗게 흔들며 온 동네가 떠나가도록 외쳐대셨다.

 

"스승께, 신들께, 모든 영광을! 여러분, 보시오. 밀라 세라뿌 가르짼에게 훌륭한 아들이 있나 없나를! 내 비록 돼지밥같은 음식을 먹고 누더기를 걸쳐야만 했으나 이것이 과연 우리의 희생에 대한 앙갚음으로 충분한지 모두들 나와 보시오! 지금이야말로 약자의 저주가 어떤 일을 해 낼 수 있는지를 증명하는 바로 그때입니다. 내 아들, 데빠가여, 참으로 장하다! 내 생전 이렇게 통쾌한 일이 또 어디 있을 것인가!"

 

증오에 차서 퍼붓는 어머니의 독설을 듣고 있던 큰아버지를 위시한 마을 사람들은 우리의 사악한 복수에 오히려 분개하여 다시는 흑마술을 쓰지 못하도록 나에게 자객을 보내기로 합의하였다. 그 소문을 듣고 어머니도 내게 편지를 보내어 그들이 다시는 그와 같은 마
음을 먹지 못하도록 나의 강력한 주술력을 다시 한번 보여 주라는 청을 해 오셨다. 나는 스승께 어머니의 편지를 보여 드리고 폭풍우와 우박을 내리게 하는 술법을 가르쳐 주시기를 간청하였다.

 

수련당에 들어가 칠일 기도를 끝내자 당 안에 구름이 모이고 번개가 치고 우레 소리가 들렸다. 그때 나는 나의 주문대로 폭풍우의 진로가 바뀌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스승께서도 이를 증명해 주셨다. 나는 곡물의 수확기를 기다렸다가 순례자의 복장으로 꾸미고 몰래 고향 마을에 숨어 들어가 뒷산 높은 곳에 호마단을 설치하고 폭풍우와 우박을 내리게 하는 주술을 행하였다.

 

그러자 검은 구름이 하늘 가득히 낮게 깔리더니 돌연 세찬 우박과 함께 폭풍우가 밀어 닥쳐 그 일대에 수확을 앞둔 많은 밀밭을 낱알 한 개 남기지 않고 싹 쓸어 버렸던 것이다. 이렇게 하여 나는 우리 가족을 비탄에 몰아넣고 학대했던 무리들에 대해 통쾌한 복수를 함으로써 또 다른 원한을 부를 수 있는 악업을 쌓았던 것이다.

 

이야기가 끊어지자 듣고 있던 대중들은 비애와 한탄으로 마음 깊이 동요되었다. 눈물이 두 빰을 적셔 내려 한동안 모두 숙연하였다.

 

 

 

제 2 장. 밝음으로의 길

 

성스런 진리를 구하다

 

렛충은 다시 자리에서 일어나 스승이신 제츈 밀라레빠께 절하고 합장한 후 말씀드렸다. "스승이시여, 당신께서는 어린 시절 친척들에게 유산을 빼앗기고 많은 학대를 받으신 후, 흑마술을 배워 그들에게 통쾌히 복수하심으로써 악업을 지었으나 후년에는 선업을 쌓으셨다고 하셨는데, 그것은 물론 성스러운 진리에 대한 헌신을 뜻하는 것이겠지요. 어떠한 연유로 스승께서는 참된 진리를 구하겠다는 마음을 내시게 되었는지요. 또 어떠한 연유로 스승께서는 참된 진리를 구하겠다는 마음을 내시게 되었는지요, 또 어떻게 그 진리를 만나게 되셨는지요?"

 

제츈은 말씀하셨다. "나는 주술로써 수많은 사람을 죽이고 폭풍우를 일으켜 재산을 파괴시키고 재앙을 일으킨 데 대해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이를 몹시 후회하게 되었다. 그 결과 나는 잠자는 일과 먹는 일을 잊고 괴로운 나날을 보내고 있었으나 차마 스승께 이를 말씀드리고 바른 진리를 수행하고 싶다고 할 수가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스승을 섬기던 한 유복하고 신앙심 두터운 신도가 중병에 걸렸다. 스승은 곧 그의 집에 초대되어 가셨으나 삼일 후 슬픔에 잠긴 모습으로 돌아오셨다."

 

내가 그 연유를 여쭈었더니 스승은 말씀하셨다. "살아있는 것이 얼마나 허망한 일인가! 간밤에 그 훌륭한 신도는 세상을 떠났다. 세상사란 참으로 무상하구나. 나는 나의 생애를, 사람들을 죽이고 비바람을 일으키는 흑마술을 수련하는 데 바쳤다. 그대 또한 이 죄 많은 주술에 전념하여 악업[카르마]을 쌓았다. 그러나 이 모든 책임은 내게 있으므로 그 대가는 전적으로 내가 받게 되리라."

 

나는 스승께 여쭈었다. "중생들이 지은 바 악업을 소멸하고 보다 높은 단계의 상태로 구제될 수 있는 어떤 방법이 없습니까?"

 

스승이 대답하셨다. "모든 중생들은 다 각각 밝은 광명을 스스로 갖추고 있어서 우리는 그 계발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것을 나는 들은 적이 있다. 그러므로 이제 나는 많은 어려움이 있더라도 확고하게 신뢰할 수 있는 진리에 이 몸을 바치고 싶다. 그대는 여기에 남아 나의 가족과 제자들을 돌보라. 나는 그대와 나의 구원을 위해 정법을 가르치는 스승 밑에서 수행하리라. 아니면 그대가 나아가 그 진리를 배워도 무방하다. 그대를 위해서 어떠한 도움도 아끼지 않으리라."

 

나는 뛸 듯이 기뻣다. 그리고 곧 스승께 내 자신이 성스런 진리를 찾아 나설 수 있도록 허락하여 주시기를 간청하였다. 그는 즉석에서 이를 수락하고 새로운 스승께 바칠 선물과 함께 짱롱 계곡에서 수행하고 있다는 밀교파의 롱통라가라는 유명한 라마를 소개해 주셨다. 그는 '대성취'라 불리는 교리에 뛰어난 분이라고 하셨다. 스승이 원하시는 바를 좇아 나는 짱롱 계곡으로 새 스승을 찾아 나섰다.

 

라마 롱통라가를 만나게 된 나는 가져온 선물을 그에게 바치고 단 일생(一生)에 모든 윤회[삼사라]의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는 진리를 배우기 위해 머나먼 서쪽 고지대에서 온 이 죄 많은 사람에게 아무쪼록 그 진리를 가르쳐 주십사 하고 부탁드렸다.

 

라마는 말씀하셨다. "나의 교리는 '대성취'라 불리듯이 참으로 완전한 것이다. 그것은 뿌리에 있어서나 가지에 있어서나 똑같이 훌륨한 것이다. 낮에 그것을 향해 명상하는 자, 낮 동안의 구원을 받을 것이며 밤에 그것을 향해 명상하는 자, 밤 사이의 구원을 받을 것이다. 선업을 짓고 태어난 사람들은 이 교리를 듣기만 하여도 구원을 얻을 수 있으므로 구태여 명상할 필요조차 없다. 이것은 가장 뛰어난 지자(知者)들을 위한 교리이다. 나는 이것을 그대에게 가르쳐주리라."

 

라마는 그 자리에서 나에게 교리를 가르쳐 주고 수행법을 일러 주셨다. 이때 나의 머리에는 과거의 일이 스치고 지나갔다. 내가 주술을 배웠을 때, 바라던 바를 달성하는 데에는 열나흘이 걸렸으며 폭풍우를 일으키는 데에는 이레가 걸렸다. 이제 나는 밤낮으로 명상하기만 하면 구원받을 수 있다. 더구나 선근이 있는 사람은 듣기만 해도 구원받을 수 있다는 위대한 진리를 만난 것이다. 나는 생각하였다.

 

'그렇다. 나는 틀림없이 이들 선근이 있는 사람들 중의 하나이리라!' 나는 이러한 자만심에 차서 명상조차 않고 잠만 자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며칠 뒤 라마가 나의 처소에 오더니 말씀하셨다.

 

"그대가 자신을 소개할 때 고지대 출신의 죄 많은 사람이라고 했는데, 그것 참 옳은 말인걸. 나도 교리를 입에 발리게 너무 칭찬하였어. 그러고도 그대에게 교리를 너무 빨리 가르쳐 주었네. 아무튼 나는 그대를 해방의 길로 인도할 수가 없다네. 로부락에 더위룽이라는 절이 있는데, 그곳에는 지금 위대하신 성자 니로빠의 성실한 제자께서 살고 계시다. 그 분은 높은 분 중에서도 가장 높은 분이며, 역경(譯經)의 제 일인자이시다. 인도 티벳 중국의 세 나라 어디에서도 찾아 볼 수 없는 새로운 탄트라(비밀한 법) 교리에 뛰어난 지식을 갖춘 분으로 역경 삼장법사 마루빠라 불리시지. 그대와 그분 사이에는 전생으로부터의 인연이 있으니 그대는 그분 밑으로 가야 할
것이다."

 

역경 삼장법사 마루빠라는 이름을 듣는 순간 나는 황홀한 기쁨으로 온몸에 전율을 느끼고 감동하여 눈물이 흘러 내렸다. 나는 다만 몇 권의 책과 약간의 음료만을 지참한 채 위대한 스승을 찾아 뵙겠다는 일념으로 다시 여행길에 올랐다. 나는 오로지 한 생각뿐이었다. "언제 스승을 만날 수 있을까?" 내가 더위룽의 밀밭에 도착하기 전날 밤, 마루빠는 꿈을 꾸었다. 위대하신 그의 스승 니로빠님이 나타나더니 그에게 관정(물을 머리에 부으며 축복을 내리고 깊은 뜻을 전수하는 의식)을 행하시고 유리로 된 약간 더럽혀진 금강저를 내어 주셨다.

 

그와 함께 감로수를 채운 황금병을 주시며 말씀하셨다. "이 병의 감로로써 금강저의 더러움을 씻어내도록 하라. 그런 후 이를 승리의 깃발(티벳의 사원이나 절 지붕 위에 꽂아 놓는 여덟 개의 경사스러운 깃발 중의 하나) 위에 놓도록 하라. 이는 과거의 모든 부처님들을 기쁘게 해 드리는 것이며, 또한 유정들에게 행복을 주는 것이니라. 그러함으로써 너와 다른 모든 이들의 목표는 달성되는 것이다." 그러더니 이내 사라졌다.

 

그가 스승의 훈시를 좇아 황금병의 감로로 금강저의 더러움을 씻어 내고 승리의 깃발 위에 올려놓자 갑자기 금강저는 눈부신 빛을 발하여 온 우주를 밝히는 것이 아닌가. 이 밝음에 놀란 육도의 중생들은 슬픔에서 벗어나 매우 행복해 하였다. 그리고 마루빠와 승리의 깃발에 대해 수없이 절을 하는 것이었다. 이 광경에 놀라 마루빠는 잠에서 깼다. 그는 묘한 행복감과 즐거움에 젖어 들었다. 그때 마루빠의 부인이 아침밥을 차려서 들어오더니 말씀하셨다.

 

"선생님, 저는 간밤에 이상한 꿈을 꾸었습니다. 서방 극락세계에서 왔다는 두 부인이 약간 더럽혀진 수정탑을 들고 오시더니 나로빠님께서 당신에게 그 사리탑을 깨끗이 하고 산꼭대기에 그것을 올려놓으라고 전하셨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자 당신께서, 그것은 이미 나로빠 대성(大聖)에 의해 축복 받은 것이지만 그분께서 명령하시는 것은 무엇이건 좇지 않으면 안 된다 하시며 곧 수정탑을 성수로 씻은 후 산 위에 놓으셨습니다. 그러자 수정탑은 해와 달과도 같이 찬란한 빛을 내며 똑같은 모양의 수정탑이 몇 개 더 드러나는 것이었습니다. 그 동안 두 부인은 마치 수호자인 듯한 행동을 취하고 계셨습니다. 이는 무엇을 뜻하는 것이옵니까.?"

 

내심 두 개의 꿈이 일치되고 있음을 기쁘게 여기면서도 마루빠는 단지 이렇게 말했을 뿐이다. "나는 허망한 꿈의 의미 같은 건 알지 못하오. 오늘 나는 밭을 갈러 나갈 터이니 잘 빚어진 맛 좋은 술을 내오도록 하시오." 그러고는 밭으로 나가 버리셨다. 얼마 후 부인이 술 한 단지를 밭으로 내가자 그는 말씀하셨다. "이것은 아마 내 몫이 되겠지. 방문객이 있으니 한 단지 더 내오시오."

 

그래서 또 한 단지를 내 오자 그는 그것을 밭둑 위에 놓고 모자로 덮어두었다. 그리고는 술단지를 앞에 놓고 술잔을 기울이며 밭갈이 후의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한편 나는 만나는 사람마다 대요기이시며 역경 삼장법사이신 마루빠가 계신 곳이 어디인가를 물으며 길을 가고 있었다. 그리고 내가 만난 대답은 대부분 그런 어마어마한 이름을 가진 사람은 자기들도 모르며 그냥 마루빠라는 노인이라면 저 너머 어디 어디에 살고 있다는 것이다.

 

나는 여러 명의 소 치는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다. 그들에게 물으니 나이 많은 이들은 모른다고 하였다. 그 중 좋은 옷을 입고 장신구를 몸에 장식한 깔끔하고 현명해 보이는 젊은이가 말하였다. "당신이 말하는 분은 나의 아버지임에 틀림없는 것 같습니다. 아버지는 전 재산을 황금으로 바꾸시어 인도로 가셔서 많은 책을 구해 오셨습니다. 당신께서 찾으시는 분이 저의 아버지라면 그분은 지금 밭을 갈고 계십니다."

 

나는 그분이야말로 틀림없이 내가 찾던 분이라 생각되었지만 귀하신 역경 삼장법사께서 밭을 간다는 것이 도저히 믿어지질 않았다.
그러한 생각을 하며 젊은이가 가르쳐 준 밭으로 가보니 건장하기보다는 뚱뚱하고 부리부리한 눈매에 위엄이 서려 있는 한 라마를 만나게 되었다. 그는 밭을 갈고 있었다. 그를 본 순간 나는 야릇한 황홀감으로 온몸의 기운이 다 빠지는 것처럼 느껴졌다. 나는 그에게 물었다. "존자시여, 고명하신 성자 니로빠의 제자이신 역경 삼장법사 마루빠님은 어디에 계시온지요?"

 

한동안 라마는 내 머리에서부터 발끝까지 찬찬히 훑어보더니 내게 물으셨다. "그대는 어디서 온 뭣하는 사람인가?" 나는 짠의 고지대 출신의 죄 많은 사람으로 역경 삼장법사 마루빠님의 학식과 명성을 듣고 바른 진리를 배우고자 찾아 온 사람이라고 말씀드렸다. "그런가. 그럼 그대가 내 대신 이 밭을 마저 다 갈도록 하라. 그리하면 내 그대를 마루빠에게 데려다 주지." 라마는 모자 밑에서 술단지를 꺼내어 내게 권하고는 밭을 잘 갈라는 말을 남기고 사라지셨다.

 

단지의 술을 다 마시자 여행의 피로가 말끔히 가시고 새로운 기운이 솟아났다. 나는 정성껏 밭을 갈았다. 얼마 후 밭갈이가 마쳐질 즈음 그 소치는 젊은이가 나를 데리러 왔다. 그 젊은이를 따라가니 바로 그 라마가 두 개의 방석 위에 모포를 한 겹 더 얹어 삼층으로 된 자리 위에 앉아 계신 것을 보았다. 몸을 단정히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이마와 코 사이에는 아직도 흙이 묻어 있었다. 그는 뚱뚱한 배를 불쑥 앞으로 내밀고 앉아 계셨다.

 

이 분은 아까 나와 헤어졌던 그 라마였으므로 나는 다른 라마가 계신가 하여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내가 바로 마루빠이다. 그러니 그대는 내게 예배하도록하라." 나는 라마의 발에 이마를 대고 예배하고는 말씀드렸다. "오, 존경하는 스승이시여, 저는 서쪽 고지대에서 온 대죄인입니다. 당신께 이 몸과 마음을 다 바치기 위해 찾아왔습니다. 부디 제게 입을 것과 먹을 것, 그리고 진리를 내려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제가 금생에서 해방을 성취할 수 있도록 가르쳐 주시옵소서!"

 

라마는 말씀하셨다. "그대가 스스로 대죄인이라 하는데, 그것은 나와는 아무 상관없는 일이야. 나는 나를 위해 그대로 하여금 죄를 짓도록 한 일이 없으니까. 헌데 대체 그대는 어떤 죄를 지었는가?" 그간의 일을 모두 말씀드리자 라마가 말씀하셨다.

 

"좋아, 내게 몸과 마음을 다 바치겠다는 그 말이 가상하다. 그런데 나는 그대에게 입을 것, 먹을 것, 그리고 진리 세 가지 모두를 다 줄 수는 없다. 그대가 다른 곳에서 진리를 구한다면 나는 그대의 먹는 문제를 해결해 주지. 하나 내게 그 진리를 구하기 바란다면 그대는 다른 곳에서 먹는 것을 해결해야 할 것이야. 그 어느 쪽을 선택해도 좋다. 또한 설령 내가 그대에게 진리를 가르쳐 준다 하여도 그대가 금생에 해방을 성취할 수 있을는지는 전적으로 그대의 정진과 인내 여하에 달려 있다."

 

나는 물론 후자를 택하기로 하였으며, 이렇게 하여 역경 삼장법사 마루빠 스승 밑에서의 생활은 시작되었다.

 

 

 

 

시 련 1

 

나는 로뿌다꾸 계곡 이곳 저곳을 돌아다니며 걸식을 하여 한 자루의 보리를 얻을 수 있었다. 그 일부로 사면에 손잡이가 달린 커다란 놋그릇으로 바꾸어서 나는 스승 댁으로 돌아왔다. 온 종일의 행각으로 피곤해진 나는 그만 보릿자루를 쿵하고 마룻바닥에 떨어뜨렸는데, 이 때문에 집이 약간 흔들렸다. 그러자 스승께서 뛰어 나오시더니 노기 띤 음성으로 호통을 치시는 것이었다.

 

"오라, 너 참 힘센 놈이로구나. 그래, 네가 알고 있다는 그 마술과 힘으로 이 집을 다 부숴 놓을 작정이야? 아주 기분 나쁜 놈이로구먼. 어서 그 자루를 내다 버리지 못할까!" 이를 보고 나는 스승의 성격이 약간 급하신 듯하니 다음부터는 행동을 조심해야겠다고 생각하며 스승께서 문 밖으로 걷어차 버리신 자루에서 놋그릇을 꺼내어 다시 안으로 들어가 이를 라마께 바치고 예배하였다.

 

스승은 그 위에 손을 얹고 명상에 잠긴 채 한참을 계셨다. 나는 그의 빰에 눈물이 흐르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기도가 끝나자 스승은 말씀하셨다. "훌륭한 것이다. 나는 이것을 나의 스승이신 니로빠님께 바치려 한다." 그러더니 스승은 손을 들어 무언가를 바치는 시늉을 하셨다. 그리고는 요령을 좌우로 힘차게 흔들고 등불용 버터 기름을 놋그릇에 세워 제단에 올려 놓으셨다. 자신의 악업으로부터의 해방에 관한 일이 한층 마음에 걸린 나는 무언가의 진리를 가르쳐 주시도록 말씀드렸다.

 

"나에게 오기를 열망하는 많은 사람들이 있다. 그런데 그들이 여기 오는 도중 야도꾸, 다꾸룽 등지의 유목민들에게 약탈을 당하고 있다. 그대는 그곳에 가서 도둑놈들에게 폭풍우를 일으키어 다시는 그 같은 못된 짓을 못하도록 혼을 내주고 오라. 이는 종교적 임무이다. 그런 후에 진실한 법을 그대에게 가르쳐 주겠노라."

 

나는 말씀하신 각각의 장소에 가서 세찬 폭풍우와 우박을 일으켜 그들을 위협한 후 돌아와 약속하신 법을 가르쳐 주시기를 청하였다. "뭐라고! 뻔뻔스럽게도 그대는 겨우 폭풍우와 같은 하찮은 담보물로 많은 비용과 희생을 치르고 인도까지 가서 구해 온 저 신성한 진리를 탐내느냐? 그대가 진심으로 진리를 구하고자 한다면 로뿌다꾸의 난폭한 산 사내들을 해치우고 오라.

 

그 놈들 역시 종종 나에게 오는 제자들의 물건을 약탈하는 등 번번이 내게 무례한 행동을 했던 자들이다. 그대의 주술로 그놈들을 혼내 주면 내 그대에게 존경하옵는 스승 대학자 [빤디드] 나로빠님으로부터 전수 받은 비밀한 가르침을 내려 줄 것을 약속한다. 이 진리는 인간으로 하여금 단 일생에 해탈을 성취케 하고 깨달음에 이르도록 하는 것이다."

 

나는 다시 말씀하신 대로 행하였다. 나의 주문은 로뿌다꾸 산 사내들 사이에 효과를 나타내어 그들은 자기들끼리 싸움을 시작, 그 싸움으로 많은 사람들이 죽게 되었다. 그러나 그 살인 사건은 또 다시 내게 심한 양심의 가책과 고뇌를 불러일으켰다. 스승은 살해된 자 중에 라마께 무례를 범한 자들이 있음을 시인하고 내게 대마술사라는 이름을 붙여 주셨다. 내가 다시 진리를 가르쳐 주실 것을 청하자 스승은 말씀하셨다.

 

"허 참, 아니 그래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많은 돈을 허비하여 천신만고 끝에 인도까지 가서 들여 온 그 귀하고 신성한 진리를 자네가 범한 악업의 대가로 가르쳐 달란 말이지. 농담하는 건 아니겠지? 나니까 망정이지 다른 사람 같았으면 자넬 죽여 버렸을 걸. 어디 그렇다면 야도꾸에 가서 자네의 주술로 엉망이 되어버린 수확을 다시 걷어들일 수 있게끔 원상 회복시키고 또 죽은 산 사내들을 다시 살려 놓고 와 보렴. 그렇다면 내 자네에게 진리를 가르쳐 줄 것이다."

 

스승을 나를 이런식으로 조롱하며 야단을 치는 것이었다. 나는 슬피 울었다. 이런 나를 존모(라마의 부인)께서는 따듯하게 위로해 주셨다. 다음날 아침 일찍 스승께서 내 방에 찾아 오셨다. "간밤에는 자네에게 좀 심하게 대한 듯 싶네. 너무 마음 쓰지 말고 잘 참고 견뎌 보게나. 헌데 자네는 재주가 좀 있는 사람 같으니 내 아들 다르마 도다이의 수행을 위한 탑을 하나 쌓아 주지 않겠는가? 그대가 이것을 완성하게 되면 기필코 그대에게 위대한 진리를 가르쳐 주겠네. 뿐만 아니라 그 동안의 침식 제공도 해 줄 터인즉 자네는 더 이상 걸식을 나설 필요도 없게 되지."

 

"그것은 좋습니다만 만일 그 동안에 제가 구원을 얻지 못한 채 죽어 버린다면 어찌합니까?"

 

라마는 웃으며 대답하셨다. "자네가 그 동안에는 결코 죽지 않으리라는 것을 내가 보장하지. 나의 가르침은 그렇게 길지가 않아. 단 두서너 마디로도 충분히 설명될 수가 있는 것이야. 인내와 투지를 갖고 내 훈시에 따라 명상해 본다면 자네가 단 한생에 밝음을 성취할 수 있는지 없는지 금방 알 수가 있지. 나의 종파는 그 어느 종파보다도 많은 불보살의 자비로써 깨달음을 향한 원력을 불어넣어 줄 수가 있거든."

 

이러한 위로의 말에 고무되어 나는 자청하여 탑 쌓기에 들어갔다. 탑이 반쯤 올라갔을 때 라마가 보시더니 탑 쌓기에 대해 자세히 연구해 보지도 않고 그 일을 시켰으니 곧 일을 중지하고 여태껏 쌓아 올린 돌이며 흙은 그 원래의 자리에 갖다 놓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하셨다.

 

모든 것을 원래 상태로 해 놓자 라마는 다시 술에 취한 모습으로 나를 서쪽 산마루로 데려 가셨다. 그리고 그곳에 같은 형태의 탑을 쌓도록 이루시고는 가 버리셨다. 새로이 명령 받은 탑을 거의 절반 높이까지 쌓아 올렸을 무렵 라마가 오셨다. 그리고는 이것도 마음에 들지 않으니 모두 허물어 원래 상태대로 해 놓으라는 것이었다. 나는 또 라마의 말씀에 따랐다. 그러자 이번에는 나를 북쪽 산마루로 데려가서는 말씀하셨다.

 

"대마술사여, 요전에 성을 쌓으라고 했을 때는 술에 취해 잘못된 지시를 내린 걸세. 암, 그것은 잘 못 된 것이고 말고, 이제야말로 이 장소에 멋진 탑을 하나 쌓게나!" 나는 몇 번이나 탑을 쌓았다가 허물고 하는 것은 스승한테도 무익한 일이지만 내게 있어서도 대단히 괴로운 일이니 잘 생각하셔서 확실한 지시를 내려 달라고 부탁드렸다. 그러자 스승께서는 말씀하셨다.

 

"오늘은 취하지 않았으니 걱정하지 말게. 탄트라 행자가 사는 집은 삼각형이어야 하니 그렇게 쌓도록 하게." 나는 삼각형 모양의 탑을 쌓기 시작하였다. 그 삼 분의 일 정도를 마친 어느 날 라마가 찾아 오셨다. "누가 이런 탑을 쌓으라고 했느냐?" 나는 말씀드렸다. "무슨 말씀이신지요? 이는 스승님께서 아드님의 수행을 위한 탑으로 몸소 제게 시키신 것이 아니옵니까?"

 

그러자 라마는 말씀하셨다. "야, 이놈 봐라. 아주 맹랑한 걸. 내가 그렇게 시켰다는 증거라도 있다는 거냐? 네 놈은 이 괴상한 마법의 성과도 같은 삼각형 탑 속에 우리 가족을 잡아 가두고 주술로 우리를 몰살시키려는 음모를 꾸미는 거냐? 이놈아, 나는 너의 상속 재산을 훔친 일이 없다. 그래 바른 진리를 갈망한다는 놈이 흑마술 신이나 모시기에 알맞은 탑을 쌓고 있느냐? 당장 허물고 모든 흙과 돌을 제자리에 갖다 놓으라!"

 

그러더니 몹시 화난 모습으로 돌아가셨다. 나는 대단히 마음이 상했으나 달리 어찌할 방법이 없었다. 나에게는 단 일생에 모든 악업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위대한 가르침이 필요했던 것이다. 나는 다시 쌓던 탑을 허물어 원래의 자리에 갖다 놓았다. 며칠 귀 라마는 나를 산보에 동행시켰다. 이리저리 배회하던 우리는 어느 구릉까지 오게 되었다. 라마가 걸음을 멈추시더니 내게 말씀 하셨다.

 

"이곳에 사각형의 흰 탑을 쌓도록 하라. 아홉 층을 쌓고 그 위에 뾰족한 첨탑을 한 층 더 얹어 도합 십 층이 되도록 하는 게 좋겠다. 이 탑은 절대로 허물게 하지 않을 것이다. 다 완성된 후에는 그대가 바라는 진리를 가르쳐 주지. 뿐만 아니라 암자에 들어앉아 그 진리를 수행하는 동안 필요한 먹을 것, 입을 것을 다 대 줄 것이야."

 

"그러시다면..." 하고 나는 말했다. "존모님을 지금 존사께서 제게 분명히 밝히신 약속의 증인으로 세워도 괜찮으시겠습니까?" , "좋도록 해라." 스승은 선선이 이를 허락하셨다. 나는 존모를 모셔다가 땅 위에 새로 지을 탑의 모형도를 열심히 그리는 스승 앞에서 말했다.

 

"존모시여, 나는 세 번이나 탑을 쌓았다가 허물어야 했습니다. 첫번에는 스승님께서 충분히 생각해 보지도 않고 그러한 지시를 내렸다 하여, 두 번째는 술에 취해서 잘못된 지시를 내렸다 하여, 세 번째는 그런 엉뚱한 지시를 내린 것은 무언가 정신이 없었거나 하여간 올바른 상태에서 내린 지시가 아니었으므로 새로 탑을 올려야만 한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이었지요. 게다가 제가 오로지 스승님의 지시대로만 한 것이었다고 말씀드릴라치면 스승님께서는 호통을 치시며 증인이라도 있냐고 화를 내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또 탑을 쌓으라 하시니, 이제 스승님께서 제게 이 자리에서 이러 이러한 지시를 내리셨음을 분명히 들으시고 후에 증인이 되어 주셨으면 합니다."

 

존모는 말씀하셨다. "물론 그렇게 해 드리고 말고요. 하나 선생님께서는 워낙 마음대로만 하시는 분이니 나중에라도 나의 증언을 인정해 주실는지는 알 수가 없군요. 글쎄 이 탑만 해도 그렇지 무엇에 쓰려고 이 탑을 쌓으라 하시는지 모르겠군요. 더구나 이 땅은 우리 소유가 아니고 저 양반의 사촌들 것이랍니다. 분명 말썽이 날 거예요. 제가 아무리 말씀드려도 들은 척이나 하셔야죠."

 

스승은 눈을 부릅뜨더니 존모에게 말씀하셨다. "그대는 부탁 받은 증인 일만 하면 될 것이야. 어이 마술사. 자네가 정 그렇게 내 약속을 믿을 수 없다면 그냥 가버리면 되지 않겠는가." 나는 또다시 명령받은 사각형 탑의 기초 작업에 들어갔다. 이 무렵 스승의 상수 제자 고꾸단, 통, 메똥 등이 관정을 받기 위해 스승 댁에 머물고 있었다.

 

그들은 틈틈이 운동 삼아 커다란 둥근 돌을 운반해 주곤 하였다. 마침 알맞은 크기여서 나는 그것들을 주춧돌로 사용하였다. 라마 마루빠가 나의 일하는 모습을 보러 오셨을 때 나는 막 일 층을 끝내고 이 층을 올리기 시작하는 중이었다.

 

그는 쌓은 탑을 주의 깊게 이리저리 살피더니 라마의 제자들이 날라다 준 주춧돌을 가리키며 말씀하셨다. "대마술사여, 그대는 저 돌을 어디서 얻었는가?"

 

나는 말씀드렸다. "존자시여, 그것은 스승님의 세 분 제자들께서 고맙게도 운반해 주신 것이옵니다."

 

"아, 그런가" 하더니 라마는 "그러나 그대는 그들이 운반한 돌을 사용해서는 안 될 것이야. 그 돌을 꺼내어 제자리에 갖다 두라" 하시는 것이었다.

 

나는 라마께 다시 허물게 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상기시켜 드렸다.

 

그러자 그는 말씀하셨다. "나는 비밀한 대진리를 전수 받은 내 제자들을 자네의 일꾼으로 쓰게 한다는 약속은 하지 않았지. 더구나 쌓은 탑 전부를 부수라는 것도 아니고 단지 내 제자들이 날라 온 돌만을 끄집어내라는 것이야."

 

그러나 그 돌을 꺼내기 위해서 쌓은 탑을 다 허물고 다시 시작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라마의 친척들이 수군거렸다. "마루빠는 제정신이 아니에요. 아 글쎄 서쪽 고지에서 교리를 배우러 왔다는 힘센 젊은 사미를 시켜 탑을 쌓다가 허물고 또 쌓다가는 허물게 하고 있구려. 필경 이번에 쌓고 있는 저 탑도 얼마 못 갈 거예요."

 

그러나 그들은 그 탑이 허물어지지 않고 계속 올라가는 것을 보게 되었다. 이 무렵 짱롱에서 스승의 제자 쫀뽀가 「최승락신만다라(最勝樂神曼陀羅)」의 대관정을 받으러 왔다. 존모는 내게 넌지시 귀뜸을 하여 주셨다. "지금이야말로 당신도 관정을 부탁드릴 좋은 기회입니다. 어서 가 보세요."

 

나 역시 이제 한 개의 돌, 한 줌의 흙이라도 모두 내 힘으로 운반하여 탑을 쌓았으니 무언가의 대가를 주시리라 생각되어 관정 법회의 대중들 사이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라마가 나를 보더니 물으셨다. "대마술사여, 그대는 이 법회에 무엇을 공물로 바치려하느냐?"

 

"존사님께서는 아드님을 위한 탑을 쌓으면 진리의 말씀과 함께 관정의 은혜를 내려 주시기로 약속하셨습니다."

 

"무엇이라고! 이 도둑놈아, 네가 그래 겨우 두서너 개의 흙벽을 쌓았다고 해서 내가 그 많은 비용과 위험을 무릅쓰고 인도까지 들어가 얻어 온 신성한 진리를 가르쳐 주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냐? 이 무슨 개뼈다귀 같은 소리냐? 네가 그에 응분한 공물을 마칠 수 있다면 좋아, 내 너에게 진리의 말씀을 전해 주지."

 

라마는 나의 머리카락을 거머쥐더니 잡아끌어 자리로부터 일으켜 세운 후 발길로 걷어차서 밖으로 내 쫓아 버리셨다. 나는 이대로 죽고만 싶었다. 숙소로 돌아와 울며 한탄하고 있던 나에게 존모가 찾아 와 위로해 주셨다. "라마는 참으로 이해할 수 없는 분이십니다. 그분은 일체 중생들에게 은혜를 베푸시기 위해 이 땅에 인도로부터 성스런 가르침을 가져 왔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어떤 때는 지나가는 개에게조차 교리를 설해 주시며 축수를 해주시기도 한답니다. 행여라도 라마께 향한 신앙심을 잃으셔서는 안 됩니다."

 

존모는 그토록 따듯하게 나를 위로해 주셨다. 다음날 아침 라마가 내 처소에 오더니 말씀하셨다. "이제 탑 쌓기는 그만하고 우선 탑의 아래층에 있는 법당을 꾸미고 그 둘레에는 열두 개의 기둥을 세워 지붕이 있는 회랑을 만들도록 하라." 지시하신 바를 끝낼 무렵 통이 새로 입문한 제자들을 데리고 관정을 받으러 왔다.

 

존모께서 버터 한 통과 천 한 조각과 구리 냄비를 내게 가져오시더니 말씀하셨다. "이것들을 공물로 바치시고 관정을 부탁해 보세요." 나는 그 물건들을 갖고 법회장으로 들어갔다.

 

스승이 나를 보더니 물으셨다. "마술사, 그래 그대는 무슨 공물을 갖고 이 자리에 끼었는가?"

 

나는 존모가 주신 물건들을 스승님께 바쳤다. "버터 한 통과 천 한 조각 그리고 이 구리 냄비입니다."

 

"아, 그것들. 그건 이미 내게 공물로 바쳐진 것들이어서 그대가 다시 바칠 수가 없지. 그대의 물건을 가져오도록 하라. 그렇지 못하다면 어서 썩 돌아가랏!"

 

스승은 자리에서 일어서더니 내게 마구 발길질을 하셨다. 쥐구멍이라도 있다면 들어가고 싶었다. '아, 이는 내가 지은 죄과의 응보란 말인가. 라마는 내가 다르마(진리)를 수행하기에는 적합치 않은 자라고 생각하시는 것일까. 아니면 그는 도대체 자비심이라고는 없는 사람일까. 그러나 진리를 모르고 사는 삶이란 얼마나 비참한 것인가. 차라리 죽어 버릴까.'

 

스승께서 지시하신 구층탑과 법당과 그 둘레의 회랑을 완성할 즈음 나는 등에 심한 통증을 느끼게 되었다. 나는 존모께 등을 보여 드리고 고통을 호소하였다. 종기가 나서 고름으로 범벅이 된 내 등을 보더니 존모는 그만 울음을 터뜨리셨다. 그리고는 스승께 나아가 애원하셨다.

 

"저 불쌍한 사미는 이제 탑을 구 층도 더 넘게 쌓아 올렸고 회랑도 완성하였나이다. 이제 그의 등에는 등창이 나서 고름하며 상처하며 차마 눈 뜨고는 볼 수 없는 지경이 되었사옵니다. 그 아이는 가진 거라곤 아무 것도 없고 선생님은 그를 위해 아무 것도 해 주시지 않으니 정말 너무 하시옵니다."

 

스승은 말씀하셨다. "그를 이리로 데려 오라." 나의 등에 난 종기를 요모조모 면밀히 살펴보시더니 스승은 고름을 짜내고 그 자리에 내 옷을 찢어 심지를 해 박으셨다.

 

"나의 스승이신 니로빠님께서는 모두 스물네 번의 시련을 겪으셨지. 그 중 열두 번은 매우 심한 것이었고, 열두 번은 그보다 덜한 것이었지만 그래도 그대의 이따위 고통과는 비교가 안 되는 것들이야. 나로 말하더라도 생명이나 재산에 대한 미련 따위는 눈곱만큼도 없이 나로빠 스승님께 헌신하였다. 네가 진리를 찾고자 한다면 보다 겸손해지라. 그리고 묵묵히 일하라."

 

출처 : 心
글쓴이 : 누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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